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출연연 학생연구원 운영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학생연구원 처우 개선이 정책 무대에 데뷔했다. 몇 년 동안 산적된 문제를 해결할 첫 단추를 뀄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 현장의 혼란도 우려된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가장 명확한 한계는 제도 적용 대상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학생연구원, 그 가운데에서도 1700여명의 기타 연수생만 근로 계약 체결을 의무화했다.
정부가 파악한 3979명의 출연연 학생연구원 가운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학생과 학·연 협동 과정생은 여전히 계약 체결 대상이 아니다. 계약 체결 '권고'에 그친 이들은 출연연 전체 학생연구원의 56.7%를 차지한다.
절반 넘는 학생연구원이 근로 계약 바깥에 남는 셈이다. 내년 2월까지 이들과 근로 계약 체결을 권고했다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 시선이 많다. 당장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가 학생연구원의 근로 계약 체결을 위해 신청한 내년도 예산은 47억원이다. 이 예산은 약 1700명(기타 연수생 규모)과의 근로 계약 체결을 기준으로 산정된 것이다. UST 학생, 학·연 협동 과정생과의 근로 계약 체결은 예산도 강제성도 없는 말 그대로 '권고'인 셈이다.
정부가 UST 학생, 학·연 협동 과정생 신분의 학생연구원의 처우 개선에 머뭇거리는 것은 출연연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 학생연구원은 학위 취득 과정에서 출연연 연구 참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학위 취득과 연구 현장 근로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학생연구원 전체를 다 포괄하려 했지만 논의 끝에 UST 학생, 학·연 협동 과정생은 권고에 그쳤다”면서 “UST 학생과 학·연 협동 과정생은 학위 취득의 일환으로 출연연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대체로 근로 성격이 약하고, 이를 포괄하려면 결국 전체 석·박사 과정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는 이번 제도가 '출연연'에 한정된 것과도 맞닿아 있다. 출연연의 기타 연수생은 근로자 성격이 다소 명확한 학생연구원 축에 든다. 그러나 출연연이 아닌 다른 연구기관, 대학 연구실에 근무하는 학생연구원은 여전히 학위 과정생과 근로자 사이의 모호한 지위에 놓여 있다. 과기정통부 설명대로 석·박사 학위 과정 전반을 손봐야 해결이 가능한 실정이다.
6만~7만명으로 추산되는 대학과 다른 연구기관 학생연구원을 이번 제도가 포괄하지 못한 이유다. 출연연의 학생연구원 4000여명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기정통부 관할을 벗어나는 이들 기관의 학생연구원 처우까지 개선하려면 교육부를 비롯한 범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연구 현장의 혼선도 우려된다. 추경으로 올해 기관 분담금을 확보했다지만 학생연구원 운영 체계화에 투입될 행정 역량은 또 다른 숙제다. 학생연구원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전담 관리 조직을 운영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행정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연구기관이 학생연구원 채용 자체를 줄이는 상황이다. 골치 아픈 정식 근로 계약을 피해 인턴, 연수생, 초단기 계약직 같은 편법 고용 형태를 창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연연 관계자는 “근로 계약은 기존에 없던 행정·예산 부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학생연구원 규모를 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특히 이번에 의무화한 기타 연수생은 UST 학생, 학·연 협동 과정생과 달리 출연연이 인위로 채용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