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410여년 전 햄릿 왕자가 부왕의 죽음과 관련해 복수를 결심하는 상황에서 한 말이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중략).”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선택의 이중성과 모호성 앞에서 갈등했다. 특이점 시대에는 햄릿이나 프로스트 같은 고민의 순간에 겪는 결정 장애, 즉 '햄릿 증후군'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으로 최적의 선택 대안이 도출되고, 빅데이터는 블랙박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금세기에 퍼펙트 스톰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화 진전에 따라 기계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초지능을 갖추게 된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초연결에 의해 산업, 사회가 성장과 진화를 거듭하는 메가트렌드다. 폭증하는 디지털 기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및 빈번한 거래를 통해 사람들은 도처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데이터의 폭증은 필연이며, 이젠 빅데이터가 대세다.
빅데이터를 예산 절감이나 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국세청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SW)를 응용한 3450억달러의 세금 누락 방지, 인공지능(AI) 모그 IA를 이용한 선거 결과 예측, 바둑 천재 이세돌과 대국한 AI 알파고 등이 그것이다. 대중교통 노선 조정, 금융 투자 상품 추천,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 등뿐만 아니라 PG&E·제네럴모터스(GE)·아마존 등 글로벌 유틸리티 및 플랫폼 기업들도 빅데이터 산업에 진입해 다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빅데이터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매킨지 컨설팅은 빅데이터가 혁신·경쟁력·생산성의 핵심 요소라고 진단하고 의료, 행정, 제조, 개인정보 산업 등에 빅데이터 활용으로 1%의 생산성 향상 및 부문별 최대 7000억달러의 경제 효과가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가 자본이나 노동력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비즈니스의 새로운 원자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정부의 빅데이터 공유 및 활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 핵심 기술 개발 로드맵 마련, 산·학·연 공동 연구 지원, 전문 인력 양성과 공공 데이터 개방 및 법률 근거 마련 등은 매우 고무된다. 데이터는 활용이 목적이기 때문에 개별이든 공공이든 부정확한 데이터는 개방해도 활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공공 빅데이터 오류율에 대한 갑론을박은 여전하다. 데이터 양이 많아질수록 데이터의 품질 관리와 신뢰성 확보는 숙제로 남는다.
한국전력공사는 지역별·용도별 전력 사용량,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계통 한계 가격 및 전기차충전소 현황 등을 개방했다.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사회 가치 창출을 위한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며,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등과의 협업을 통해 데이터 표준화와 시스템 간 데이터 연계도 중점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고객 및 센서 등에서 생성되는 연간 3조3000억건의 데이터를 전력 수요 관리, 설비 고장 예지, 에너지 경제성 분석과 효율화 및 공익 증진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빅데이터는 기존 산업 경쟁력 강화와 산업 구조 고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포석이다. 한전의 빅데이터 기반의 산업 혁신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장밋빛 기대에도 빅브라더 도래의 개연성과 데이터 권력에 대한 우려도 상존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최첨단' 기술보다 '충분히 훌륭한' 기술이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개인 정보 유출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인권 침해 등 빅데이터가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사전 대책이 필요하다. 빅데이터가 인류 보편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한 따스한 기술로 활용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동섭 한국전력공사 CTO(신성장기술본부장) bizo184@kep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