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질 전반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익만 추구하는 재경본부가 결정권을 가진 구조에선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비판이 회사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또 연구개발(R&D) 강화를 통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브랜드와 중국 현지 브랜드 사이에서 위치 선정을 새롭게 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상반기 현대·기아차 중국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3.3% 감소한 52만6387대를 기록했다. 현대차 판매량은 36만119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8.8% 줄었고, 기아차는 41.5% 감소한 16만6268대 판매에 그쳤다.
현대차는 올해 초 신차 '위에나(베르나)'를 앞세워 전년 동기 대비 약 9.1% 성장했지만 3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아차를 포함한 현대·기아차 전체 중국 판매량은 1월부터 이미 역성장이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사드 보복으로 감소세가 커졌을 뿐 직접 원인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드 보복 이전에도 기술, 품질, 브랜드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품질, 원가, 소비자 니즈를 맞추는 역량, 혁신 역량, 디자인 차별화, 성능 차별화, 편의 사양 등 성능이나 기술 우위 제품으로 시장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모호한 브랜드 포지셔닝과 가격 설정으로 위기를 자초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 출시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x25'는 가격이 11만9800위안(약 1990만원)부터 시작된다. 반면에 중국 창청자동차 SUV 브랜드인 '하발(HAVAL)' 소형 'H1'는 6만8900위안(1146만원)으로 ix25 절반 가격에 불과하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ix25는 현대차가 원가를 최대한 절감해서 내놓은 차량이지만 여전히 비싸고, 중국 동급 모델 대비 디자인이나 상품성이 크게 뛰어나지 않다”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모델을 출시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데 가격이나 상품성이 모두 모호하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차량 가격을 재경본부에서 결정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진단했다. 재경본부가 수익성 위주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상품, 영업본부 등이 시장 지향성 가격 책정을 주도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토요타,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들을 비교했을 때 수익 지향형 기업은 미래가 없다”면서 “재경본부는 단기 수익성 확보보다 R&D 투자 확대, 시장 경쟁력 강화 등 장기 관점에서 재무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조 원가 절감을 위해서는 부품 공급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그룹 계열사나 기존 협력 업체뿐만 아니라 중국 현지 부품업체의 협력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재경본부가 부품 가격을 보장해서 차량 가격을 책정하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시장 상황에 맞는 마케팅이 어렵다”면서 “저렴한 중국 현지 부품 협력사 채택 비중을 높이는 것이 현대차에는 원가 절감, 국내 부품사에는 공급망 다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소 역할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쏘나타만 보더라도 부품 가격은 계속 올랐지만 차 중량은 오히려 늘어 경량화를 실현하지 못했다”면서 “연구소의 부품 선행 기술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 전문가는 “현대차 계열사나 협력사 가운데 혁신과 변화가 없는 기업이라면 관계를 재정리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