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직수형 정수기와 저수조 정수기의 빅뱅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160만대 규모의 정수기 시장을 두고 선두 주자와 후발 주자가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다.
코웨이와 청호나이스가 저수조 정수기에 주력하는 반면에 LG전자, SK매직, 쿠쿠전자 등 대체로 역사가 짧은 업체들은 직수형 정수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위생' 앞세운 직수형 정수기, 전체 시장 50%까지 성장
직수형 정수기는 물을 별도 장소에 보관하지 않고 정수해서 곧바로 내보내는 방식의 제품이다. 저수조가 없어 크기가 작고 가볍다. 대체로 저렴한 중공사막이나 나노필터를 활용해 단가가 낮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공사막은 신장투석기에 사용하는 중공사, 나노 방식은 전기의 인력 현상을 응용한 필터다. 둘 다 대장균과 유기 오염물질 제거가 가능하다.
최근 제조사들이 냉수와 온수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더하면서 수요를 촉진시켰다. 직수형 정수기의 비중은 2015년 21.2%에서 지난해 32.8%까지 증가했다. 올해는 5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당초 예상치인 34.0%를 뛰어넘는 수치다.
전체 정수기 시장은 올해 160만대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정수기 렌털 신규 계정 수는 2015년 141만대, 지난해 152만대에 비해 소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수형 정수기 시장의 문을 연 것은 코웨이다. 코웨이는 2012년에 직수형 제품의 시초격인 '한뼘 정수기'를 선보였지만 저수조 제품 비중이 높아 판매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다. 그 대신 LG전자와 SK매직 등 후발 주자로 하여금 시장에 진입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직수형 정수기는 저수조 제품에 비해 제조 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얼음정수기 니켈 검출 사태의 반사이익도 작용했다. 저수조에 불안을 느낀 소비자들이 직수형 정수기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직수형 정수기 업체는 위생을 내세운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안전 욕구를 공략하고 있다.
◇“위생은 우리도 검증됐다”…저수조 정수기 업체
일각에서는 직수형 정수기의 위생성이 마케팅 차원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필터, 유로관과 코르크도 수질과 직결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필터를 교체하지 않거나 유로관, 코르크 등을 소독해 주지 않으면 직수형 정수기에서도 이물질이 검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플라스틱 저수조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비위생일 것이란 편견과 달리 저수조 자체도 위생성을 인정받았다는 게 관련 업체의 입장이다.
코웨이 관계자는 “친환경 재료인 폴리프로필렌에 항균 처리를 해서 저수조를 생산하고 있다”면서 “영유아 젖병에 사용하는 소재와 같아 사용하기에 안전하며, 미국 수질협회 WQA 인증도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저수조 정수기는 직수형보다 오염 물질을 잘 걸러 낸다는 장점이 있다. 저수조 정수기는 삼투 현상을 반대로 적용한 역삼투압 방식을 채택했다. 역삼투압 필터는 불순물이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물을 빠져나가게 하기 때문에 깨끗한 물만 남게 한다.
역삼투압 필터의 구멍 크기는 0.0001나노미터(㎛)로 중공사막 필터와 비교해 최대 1000배 이상 촘촘하기 때문에 유기오염물질, 대장균, 중금속을 포함한 이온성 물질 등 다양한 성분을 걸러 낼 수 있다. 가격이 중공사막과 나노 필터보다 비싼 면은 있다.
관련 업체는 저수조 정수기의 물에 미네랄이 없다는 논란도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반박한다. 애초에 물로는 미네랄 섭취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0년 공주대 식품영양학과 논문에 따르면 시판 생수로부터 공급 받는 미네랄은 한국인 미네랄 섭취 기준의 0.4~1.0%에 불과하다. 그 대신 음식물로 섭취가 가능해서 미네랄 여부가 정수기 선택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게 업체의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직수형=깨끗한 정수기'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황과 우선순위에 맞게 정수기를 골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렴한 가격에 작고 가벼운 정수기를 원한다면 직수형, 중금속까지 완벽히 걸러 낸 물을 마시고 싶다면 저수조 제품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단 어떤 제품을 사용하든 정기 소독, 세척, 필터 교체는 필수다. 코웨이나 청호나이스뿐만 아니라 직수형 정수기 업체인 LG전자와 SK매직도 직수관 교체, 코르크 살균 케어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위생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에 위생 강화 기능이 있는지, 관리 업체의 위생 관리 역량은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직수형과 저수조 방식에 따라 오염 물질 제거 성능 및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용자 성향과 환경에 맞는 제품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