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맥주 소비는 급증한다. 최근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치맥' 열풍과 함께 혼자서 술을 마시는 '혼술족', 집에서 가볍게 즐기는 '홈술족' 증가로 국내 맥주 시장이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산 맥주와 함께 수입 맥주가 비약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맛의 수제 맥주까지 인기를 끌며 맥주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해 온 국내 맥주 시장은 롯데주류의 가세로 '맥주 삼국지' 시대가 열렸다. 최근엔 수입 맥주와 함께 수제 맥주(크래프트 맥주)까지 가세, 새로운 개념의 '신(新) 맥주 삼국지' 시대도 열렸다.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는 지난 84년 동안 치열한 경쟁을 계속해 온 숙명의 라이벌로서 국산 맥주의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1933년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현재 서울 영등포구) 10만평 부지에 회사명 '조선맥주주식회사'로 공장을 건립했다. 조선맥주주식회사는 광복 후 미국 군정에 의한 적산 관리 기간을 거쳤으며, 대표 브랜드명을 '조선맥주'에서 '크라운맥주'로 바꿨다.
조선맥주주식회사는 1967년 부산에서 주정·소주 등을 생산하던 대선발효공업의 회장을 지낸 박경복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박 명예회장은 1977년 경남 마산에서 '이젠벡' 맥주를 생산하고 있던 한독맥주를 인수하는 등 사세 확장에 들어갔다. 1989년 전주공장, 1997년 강원공장을 건립하는 등 현재 강원·전주·마산 3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1991년 2세 체제로 전환한 박문덕 회장(당시 사장)은 기존의 대표 브랜드인 크라운맥주를 대신해 '천연 암반수'를 콘셉트로 한 신제품 '하이트'를 1993년에 출시하며 맥주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하이트는 출시 3년 만에 맥주 시장 1위에 오르며 오랜 기간 국내 최고 맥주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박 회장은 1998년에 사명을 하이트맥주주식회사로 바꿨고, 2005년에 진로를 인수하며 하이트진로그룹을 출범시켰다. 2008년에는 하이트홀딩스를 출범시켜서 지주회사 체제를 공식화했으며, 2011년 김인규 사장 취임 후 같은 해 하이트진로주식회사 통합 법인을 출범시켰다.
오비맥주도 하이트진로와 같은 해인 1933년에 쇼와기린맥주 한국공장에서 역사가 시작됐다. 광복 후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이 인수, 1948년 동양맥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현재 회사명이 된 '오비맥주'는 날개 돋친 듯 판매되면서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한국 최초로 통 생맥주, 병 생맥주를 시판하면서 1995년에 사명이 오비맥주로 변경됐다. 1999년에는 진로와 미국 쿠어스사가 합작해 만든 진로 쿠어스맥주를 인수, 현재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카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비맥주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후 구조 조정 과정을 거쳤으며, 1998년에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에 지분 50%와 경영권을 매각했다. 2001년에 지분을 추가 매각해 AB인베브가 오비맥주의 새 주인이 됐으며, 2009년에 사모펀드인 KKR-어피너티에 18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받고 재매각했다.
이후 2014년 AB인베브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교두보를 한국에 마련한다는 전략에 따라 KKR-어피너티에 58억달러(6조1680억원)를 주고 오비맥주를 되사들였다.
AB인베브는 오비맥주 인수 후 국산 맥주뿐만 아니라 수입 맥주 라인업도 다양화, 국내 맥주 시장 1위의 수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80년 넘게 양강 체제를 구축해 온 국내 맥주 시장은 2014년 롯데주류가 '클라우드'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맥주 삼국지' 체제로 전환됐다.
라거 맥주 일색이던 국내 시장에 독일 정통 제조 방법인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으로 만들어서 깊고 풍부한 맛을 살린 클라우드는 출시 2년 만에 누적 판매량 3억2000만병을 돌파하며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롯데주류는 2014년 말 맥주 1공장의 생산 규모를 연간 5만㎘에서 10만㎘로 2배 늘리는 증설 공사를 완료했으며, 7000억원을 투자해 맥주 제2공장도 완공했다.
다양화되는 소비자 기호 충족을 위해 '클라우드 마일드'와 무알코올 맥주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 등을 내놨다. 5월엔 라거 타입 신제품 '피츠 수퍼클리어'를 선보이며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롯데주류의 올해 맥주 부문 목표는 매출 1600억원 달성과 동시에 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대 진입이다.
국내 맥주 시장이 재편되는 동안 수입 맥주 시장도 급성장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1년 5만9000t 수준이던 맥주 수입량은 2014년 11만9500t으로 2배 늘어난 데 이어 2015년 17만t, 지난해 22만t으로 급상승했다. 올해 1분기 수입량도 6933만5490ℓ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수입 맥주의 매출은 국산 맥주를 넘어섰다. 400종이 넘는 다양성으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묶음 할인 판매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4년 소규모 양조장도 맥주를 만들어 유통시킬 수 있는 주세법이 개정, '크래프트 맥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청와대 만찬주'로 화제를 모은 강서맥주와 달서맥주에 이어 강남, 해운대, 서빙고, 제주 등 지역 이름을 단 맥주가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 생겨나 약 70여개의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이 저마다 고유 브랜드 맥주로 소비자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제 맥주는 최근 주류세 경감 혜택이라는 날개도 달았다.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80여년 동안 양강 체제를 구축해 온 국내 맥주 시장이 2014년 롯데주류의 시장 진입, 주세법 개정, 수입 맥주 인기 등으로 변화를 맞았다”면서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국산 맥주, 수입 맥주, 크래프트 맥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