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바람에서 강풍으로 돌변하는 '지중해의 바람'. 이탈리아 럭셔리카 브랜드 마세라티 100년 역사상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르반떼'를 뜻하는 아랍어다. 독특한 차명처럼 르반떼는 일상 주행에선 편안하고, 고속 주행에선 맹위를 떨쳤다.
르반떼는 국내에서 '도깨비 차'로 더 유명하다.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 김신(공유)의 차량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 인기 덕분인지 1억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가격에도 르반떼는 올 상반기에만 450대가 계약되며 마세라티의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도로 위에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만큼 첫인상은 강렬했다. 매끄럽게 다듬은 근육질 차체와 날카로운 캐릭터 라인으로 역동성을 강조한 마세라티의 디자인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삼지창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 측면 휀더에 자리한 사다리꼴 형태의 에어 벤트, C필러의 브랜드 로고가 마세라티 가문의 일원임을 나타낸다.
실내는 이탈리아 자동차 특유의 섬세함과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곳곳을 검은색과 빨간색 두 가지 색상의 최상급 가죽으로 마감하고, 시트에 마세라티 로고를 새겨 넣었다. 시트 포지션을 세단처럼 낮게 배치해 마치 스포츠카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차체 크기에 비해 실내 공간이 넓진 않다는 점은 아쉬웠다.
시동을 걸자 으르릉거리는 배기음이 귓가를 울린다. 주인에게 달리고 싶다고 애교를 부리는 것 같다. 시승차는 르반떼 최상위 모델인 르반떼 S로 3.0리터 V6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과 ZF사가 개발한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430마력, 최대토크는 59.1kg·m에 이른다.
제원상 수치만 보면 스포츠카처럼 튀어나갈 것 같지만, 일상 주행에서는 묵직한 움직임을 보인다. 고급 세단처럼 부드러운 승차감이 인상적이다. 도깨비 차로 변신할 차례다. 기어박스 왼쪽의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면 스포츠카로 돌변한다. 차체가 내려가고 변속 시점이 늦춰지면서 쏜살같은 가속 반응을 보인다. 마세라티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도 한층 더 커진다.
제대로 힘을 내보기 위해 한적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찾았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니 약 5초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안전을 위해 최고속도(시속 264km)를 내보진 못했지만, 끝없이 가속할 수 있을 것같은 힘이 느껴진다. 고속 안정감도 훌륭하다. 에어스프링과 전자제어식 댐퍼를 적용한 서스펜션, 도로 상황에 따라 네 바퀴에 힘을 고르게 배분하는 지능형 사륜구동 시스템이 밑바탕이 됐다.
달리는 즐거움을 배가하는 핸들링은 정확하다. 유격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스티어링 휠을 운전자가 돌리는 만큼 직관적으로 라인을 그려나간다. 차체 앞과 뒤의 무게가 50:50으로 완벽하게 배분돼 급격한 코너링 공략도 어렵지 않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은 차량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준다.
유류비를 논할 차가 아니지만, 연비는 아쉬웠다. 서울 도심과 외곽 전용도로 150km 정도 주행하는 동안 1리터로 5~6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었다. 공인 복합연비는 리터당 6.4km(도심 5.6km, 고속도로 7.8km) 수준이다.
가격은 억소리가 절로 나온다. 기본형 기준으로 르반떼 디젤 1억1000만원, 르반떼 가솔린 1억1400만원, 르반떼 가솔린 S는 1억4600만원부터 시작된다. 시승차 가격은 르반떼 S 럭셔리 패키지(1억6490만원)에 최고급 인테리어와 오디오 시스템(920만원)을 더한 1억7410만원이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