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기업이나 대학이 할 수 없는, 미래 산업을 이끌어 낼 원천 연구에 힘써야 합니다. 전에 없던 분야에 힘을 쏟고 새로운 결과물을 낼 때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개인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김기웅 표준연 생체신호센터장은 아주 낮은 인체 자기장을 측정하는 연구에 매진해 왔다. 그동안 인류가 파악하지 못한 신호를 검출하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다. 영하 240도 이하의 매우 낮은 온도에서 금속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을 이용해 신호 검출 능력을 극대화한다. 뇌신경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뇌자도' 장치, 이를 심장에 적용한 '심자도'장치에 쓰인다.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면 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미세한 변화, 정보의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미지의 영역인 뇌를 탐구하는 선도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각종 심장질환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은 매우 낮은 자기장인 '극저자장'을 이용해 새로운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개발한다. 현재의 MRI 장비 개발 추세에 역행하는 연구다. 극저자장에 초전도 현상을 접목해 자기공명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식이다. 세계의 MRI 시장은 상용화된 3테슬라(T)를 넘어 11T의 장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자기장이 클수록 인체의 자화 신호가 증폭되고 더 정밀한 영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낮은 자기장 특유의 물리현상을 활용하면, 기존의 높은 자기장에서는 측정할 수 없었던 정보를 영상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영제 없는 암진단, 뇌기능 연결성 등이 그 예다. 미래 먹거리로써 신 의료기기 산업을 촉발할 수 있다.
“사실 극저자장을 이용한 MRI는 굳이 어려운 길을 고집해 가는 겁니다. 하지만 인류와 과학기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김 센터장은 선뜻 나서기 새로운 연구에 힘써왔다. 선뜻 나서기 어려운 연구였다. 선도적인 연구는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연구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김 센터장은 출연연의 후배들이 시류를 거스르더라도 의미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대학이 할 수 없는 연구를 출연연이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김 센터장은 “출연연의 미션이 퇴색되고 다른 곳과 비슷한 연구들을 하면서 '출연연 무용론'이 나오게 된 것”이라면서 “출연연의 일원이자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대체 불가능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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