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혁신본부 예산권 확보에 필요한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 작업이 멈춰 섰다. 여야의 주요 현안에 끼지 못하면서 8·9월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당마저 연내에만 처리하면 문제없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과기계는 예비타당성조사 권한 확보 지연 등으로 인한 연구개발(R&D) 실기를 우려했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은 지난 6월 초 발의 이후 두 달이 넘도록 해당 상임위에도 회부되지 않았다. 이들 법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가 기획재정부와 R&D 지출 한도를 공동 설정하고, R&D 예타 조사 권한을 기재부에서 이관 받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형제법안'으로 발의된 정부조직법은 지난달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됐지만 문재인 정부의 과기 거버넌스 개편을 마무리할 두 법안은 미뤄졌다.
8~9월 국회에서도 국가재정법, 과기기본법 처리는 요원할 전망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8월은 결산국회 일정 때문에 상임위가 결론에 근접하지 않은 법안은 물리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하다”면서 “국가재정법·과기기본법은 처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 부대표는 “과기혁신본부 예산권은 2019년도 예산부터이기 때문에 법안을 연내 처리하면 기능을 행사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여당 차원에서 법안 처리를 서두를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여당의 관심이 약하니 야당 반응도 미지근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야 협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여당이 법안 처리에 적극 나서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9월 정기국회에서도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기계는 법안 처리 지연으로 예타 조사 권한 확보가 미뤄지는 것을 우려했다. 지금까지 국가 R&D 사업에 대한 예타 조사는 기재부 고유 권한이었다. 과기계는 이 때문에 R&D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 예타 조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과기정통부로 예타 권한을 이관하기로 했다.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정부의 과기 혁신은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수장 출신인 한 인사는 “지금도 정부의 R&D 예타 조사를 기다리는 사업이 줄을 선 상태”라면서 “국가재정법, 과기기본법 처리가 늦어질수록 전문성이 결여된 사업 평가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R&D 예산 지출 한도 공동 설정도 미룰 수 없는 문제다. 국가 R&D 예산은 지금까지 기재부가 지출 한도(실링)를 설정해서 각 부처에 보내면 그에 맞춰 사업을 짜고, 과기정통부(옛 미래부)가 최종 심의·조율했다. 과기정통부를 거친 예산안은 다시 기재부를 거쳐 국회에 상정되는 순서다.
문재인 정부 구상은 실링 설정 단계부터 과기정통부를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매년 봄께 실링이 나온다. 과기정통부가 2019년도 실링 설정에 참여하려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대비를 해야 한다. 관련 법안 처리가 10월 이후까지도 불투명하면 준비 일정이 빠듯하다. 현장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