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증권거래소는 자본시장의 성장엔진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거래소를 중심으로 기업 가치를 키우고, 변화하는 미래에 대응하고 있다. 반면 우리 거래소는 경영진 선정부터 수익구조까지 제자리걸음이다. 전자신문은 경제 발전을 위한 거래소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개선과 선진화 방향을 제시한다. 자본시장 미래는 거래소 바로서기에서 출발한다.
한국거래소가 새 이사장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17일 정찬우 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공식 사임의사를 밝힌 뒤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 초 추석연휴가가 길어 관련 절차를 서두를 계획이다. 9월 말까지 신임 이사장 선출이 목표다.
![한국거래소 전경](https://img.etnews.com/photonews/1708/986271_20170822145746_840_0001.jpg)
거래소 이사장은 금주 공모를 시작,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열흘 간 후보자 지원을 받는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서류심사, 면접을 거친 뒤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한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는 사외이사인 공익법인 대표들과 증권회사, 유가증권시장(코스피)·코스닥 대표가 참여한다.
현재 후보군은 정은보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성진 전 조달처장, 서태종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 정부 출신 인사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정치권은 국회 정무위에서 활동하고 문재인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김기식·홍종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후보군이다. 거래소 내부 출신으로 김재준 코스닥시장 위원장, 최홍식 전 코스닥본부장, 이철환 전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이 언급된다.
증권거래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사장 선임을 놓고 자격 시비를 빚어왔다. 금융시장에서는 더 이상 전문성 없는 인사는 안 된다는 분위기다.
17일 사임 의사를 밝힌 정찬우 이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정권에서 금융위 부위원장과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자본시장 관련 전문성이 낮고, 전 정부 측근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임기 1년도 못 채웠다.
거래소 출범 이후 50여년 간 역대 이사장의 절반은 옛 재무부 관료 출신이 채웠다. 2005년 통합거래소 출범 이후도 마찬가지다.
이영탁 초대 이사장은 재경원 예산실장, 교육부 차관, 국무조정실장까지 지냈다. 이정환 전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재경부 국고국장을 맡았고, 노무현 정부 때는 국무조정실 심사평가조정관을 지냈다. 이 전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거래소 공공기관 지정 등의 '외풍'을 맞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키움증권 대표를 지낸 김봉수 전 이사장은 고려대 인맥 등이 부각되면서 'MB맨'으로 분류됐다. 결국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별다른 이유 없이 사퇴했다. 최경수 전 이사장은 조달처장까지 지낸 관료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서 일한 바 있다.
2005년 통합거래소 출범 이후 10년이 넘도록 정권 주변 인물로 이사장이 선임됐다. 5명 중 4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관치금융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외풍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다. 이사장이 정권 따라 떠밀리듯 떠나며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IPO) 등의 과제도 지지부진해졌다.
거래소는 증권회사와 선물회사가 주요 주주로 있는 민간회사다. 31개 금융투자업자가 86.18%, 중소기업진흥공단이 3.03%, 한국증권금융이 4.12%, 한국금융투자협회가 2.05% 보유하며, 4.62%는 자기주식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증권·선물 분야 독점시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공공성 논란이 제기됐다. 거래소가 2009년 '방만 경영'을 이유로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2015년 해제된 것도 정권 입김이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래소는 민간기업으로 공공기관인 예탁결제원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받는다. 신임 이사장에게 개혁성이 요구되는 것도 이 같은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 사항으로 지배구조 선진화를 내세웠다. 정부 인사 방침에서도 무자격자, 부적격자의 낙하산이나 보은인사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에서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이나 김상조 공정위원장 모두 경제 전문가이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라며 “금융시장에 누구보다 잘못을 잘 알고 있는 동시에 관치금융의 폐해 역시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이라고 평가했다.
신임 거래소 이사장은 전문성, 독립성, 개혁성을 갖춘 인사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후보군도 증권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인사 풀을 대폭 넓히는 것도 방안이다.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하는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거래소 이사장에 내부가 낫다, 외부가 더 낫다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부 발탁 역시 조직논리나 이해관계를 거스르기 힘든 문제가 있다”며 “정경유착 관계를 끊고, 거래소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와 회원사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희 경제금융증권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