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충전기가 더 많은 르노삼성 전기차

르노삼성 전기차가 사용할 수 있는 전국 공용충전기 수가 실제 차량보다 크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2013년 국내 출시된 'SM3 Z.E.'는 세계 유일하게 독자 충전규격을 쓰는데도 정부나 공기업·민간업체까지 기준 없이 이 충전기를 깔고 있다.

2013년 10월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열린 SM3 Z.E. 양산 1호차 기념식 장면.
2013년 10월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열린 SM3 Z.E. 양산 1호차 기념식 장면.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까지 전국 공용시설에 구축하는 급속충전기(50㎾h급) 수가 약 2300기로, 환경공단·한국전력 발주 및 계획 물량까지 합치면 올 연말이면 총 4000기가 깔린다. 이들 충전기 99% 이상이 르노삼성 전기차만 쓰는 '교류(AC)3상' 규격을 포함해 직류(DC)차데모·DC콤보(타입1) 방식을 동시에 채용했다. 충전 케이블만 3개가 달렸다.

이 충전기 물량(4000기)은 2013년 출시 이후 약 2900대가 팔린 'SM3 Z.E.'보다 1000대 이상 많다. 국내 판매 1위로, 7000대 이상 팔린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비교하면 'SM3 Z.E.' 공용충전소 접근성이 두 배 더 뛰어난 셈이다.

세계 유일하게 직류(DC)차데모·DC콤보(타입1)·교류(AC)3상 3가지 규격을 채용한 국내 급속충전기 가격이 차데모 방식만 쓰는 일본 제품보다 30% 이상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르노삼성 AC3상 규격은 교류 전기를 쓰기 때문에 교체주기가 2~3년인 전용 변압기(약200만원)와 충전케이블 등 300만원 안팎에 비용이 더 든다. 결국 르노삼성 전기차만을 위해 정부와 공기업 등 최소 120억원 추가 예산을 쓸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내 전기차 운전자 90% 이상이 주로 가정 등에 7㎾h급 개인전용 충전기를 보유하고 있어, 공용충전소 의존도가 크지 않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낭비요소는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국가기술표준원이 지난 4월 국내 충전 규격을 DC콤보(타입1)로 단일화했는데도, 충전기 구축사업자인 환경공단과 한국전력, 민간업계는 시장 눈치만 보며, 단일 표준에 따른 시장 대응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기관 관계자는 “국표원이 낭비요소를 줄이기 위해 충전 규격 단일 표준화를 결정한 상황이지만, 제작사 협조나 일부 특정 전기차 이용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예산 낭비뿐 아니라, 복수 규격 운영에 따른 충전기 고장 등 애로점이 많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올해 4분기 배터리 용량을 30% 가량 늘린 'SM3 Z.E.' 업그레이드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자체 충전규격 교류(AC)3상은 유지할 계획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배터리 확장된 SM3 전기차 업그레이드 모델도 역시 충전규격을 AC3상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고객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자구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가표준정책과 시장성 이유로 올해 출시 차량부터 충전 규격을 차데모에서 '콤보1'으로 바꿨다. 정부 보급 대상 6개 전기차는 중 콤보1를 쓰는 차량은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쏘울EV', GM '볼트(Bolt)', BMW 'i3'이다.

환경공단이 전국에 운영 중인 공용 급속충전기는 673기로, 현재 260기가 구축 중이며 연말까지 570기를 추가한다. 885기를 운영 중인 한전도 연말까지 700~800기를 순차적으로 발주할 예정이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