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신사를 자처하는 말쑥한 차림의 영국식 '훈남'이 대거 등장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액션 영화로는 드물게 20~30대 여성 관객이 많았다.
액션도 훌륭했다. 방탄우산 등 첩보물 특유의 멋진 소품이 많았고, 다리에 구부러진 칼날을 달고 사슴처럼 뛰며 화려한 발차기를 뽐내던 악당 '가젤'도 신선했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킹스맨 1편은 본 코너에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악역을 맡은 사무엘 L. 잭슨이 세계 지배를 위해 휴대폰에 비밀 칩을 심는다는 내용을 다뤘다. '욕의 화신'인 이 배우는 이번에도 화려한 욕 스킬로 귀를 즐겁게(?) 했다.
재차 킹스맨을 불러낸 이유는 이 영화에 '초고속 튜브 트레인'이라는 기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훈남역을 담당한 해리(콜린 퍼스)와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양복점으로 위장한 킹스맨 본부에서 어딘가로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와 지하철 같은 걸 이용하는데, 이게 바로 초고속 튜브 트레인이다.
초고속 튜브 트레인은 비밀요원이 타기에 안성맞춤인 교통수단이다. 배트맨처럼 시커먼 천으로 온몸을 가리지 않는 이상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이동하려면 지하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 얼굴을 가리지 못하는 정장 차림의 킹스맨은 신분 노출 위험이 크다.
지하철처럼 느릿느릿 다녔다간 욕의 화신이 세상을 점령하고 말 것이기 때문에 몹시 빠른 이동체가 필수다. 지하로 다닐 것, KTX처럼 빠를 것. 두 조건을 만족하는 게 초고속 튜브 트레인이다.
초고속 튜브 트레인은 우주 공간에 기차를 달리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상에 튜브를 설치하고 내부를 진공에 가까운 상태로 만든 다음 전자기력으로 기차를 공중에 띄운다. 그러면 시속 1000㎞ 이상 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총알처럼' 빨리 달리는 것이다.
공상처럼 보이던 이 아이디어를 현실에 옮기려고 시도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건 전기차 '테슬라'로 유명한 미국의 앨런 머스크다. 그는 2012년 '스페이스엑스'라는 회사를 세우고 초고속 튜브 트레인 시스템 '하이퍼루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실현은 안 됐지만 그의 무모한 도전과 유명세 덕분인지 하이퍼루프는 초고속 튜브 트레인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유형의 교통수단을 만들려는 시도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초기에는 육상에서 화물을 빠르게 운송한다는 개념으로 출발했으며 점차 여객용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2007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초고속 튜브 트레인은 2030년쯤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릴 때 발생하는 고열을 견뎌야 하는 데다 좁은 터널 안을 달릴 때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도 대비해야 한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