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딱딱…'
2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청소년게임장을 찾았다. 가게 바로 앞에는 낡은 의자 서너 개가 놓여있었다. 행색이 초라한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20여대 안팎의 오락기가 일제히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손님은 대여섯명뿐이다.
“한 시간만 넣어주세요”라고 말한 뒤 빈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런데 가게 종업원이 급하게 달려와 “손님이 있는 걸 보면 모르냐”고 화를 냈다. 그는 버튼 위에 올려진 기계를 가리키며 “손님이 있다는 표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락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들렸던 소리 근원지가 바로 이 기계였다.
어른 손바닥만한 기계는 오락기 버튼을 1초에 2~3번꼴로 계속 눌러댔다. 사람 대신 게임을 하는 것이다. 기계 윗면에는 '딱따구리'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다. 종업원은 딱따구리가 없는 자리로 안내했다. 선불로 1만원을 내자 게임용 카드를 줬다. 그는 “카드를 오락기에 넣고 게임 하면 된다”며 계산대에서 가져온 딱따구리를 버튼 위에 설치하고 가버렸다.
게임은 자동으로 시작됐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화면만 물끄러미 지켜봐야 했다. 게임은 6장의 카드를 차례로 고른 다음 한 장씩 내는 방식이다. 컴퓨터가 보유한 카드와 비교해 높은 숫자가 나오면 이기는 단순한 내용이다. 그러나 딱따구리 탓에 승부를 겨뤄보지도 못했다. 조이스틱 커서가 엉뚱한 데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하염없이 진행 버튼을 눌러댔기 때문이다. 게임 한 판이 10여초 만에 끝났다.
하지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분명 이기는 게 불가능한 구조인데 난데없이 해파리와 복어가 등장하며 승전보를 알렸다. 옆자리에 있던 한 남성은 “돈을 더 넣고 하다보면 상어(복어보다 더 높은 등급)가 뜨기도 한다”며 “상어를 잡아 환전하면 10만원 넘게 챙길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상어를 두 번이나 잡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단속을 나왔다. 의외로 오락실 분위기는 차분했다. 종업원이나 게임을 하던 손님 모두 별일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경찰이 왔으니 큰 거(상어, 고래 등 높은 등급 아이템) 터지는 거 아니냐”는 비웃음마저 흘러나왔다.
단속은 딱따구리 하나를 압수하는 데 그쳤다. 출동한 경찰관은 “현장에서 불법 행위를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오락실은 현행법상 불법 영업소다. 청소년 게임을 성인용으로 개조,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해당 게임은 올해 초 전체 이용가 등급으로 분류됐다. 당시 허가받은 내역에 따르면 다른 사용자나 컴퓨터와 대결해 승부를 내는 형태로 설계됐다. 확률이 아닌 실력으로만 승패가 갈린다. 자동 진행 방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케이드게임 제조업체 한 대표는 “청소년게임장을 가장한 불법 업체가 전국에 1000곳 넘게 있다”며 “게임물 허가 단계에서 걸러내지 못하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