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2018년 예산안은 한 마디로 '국정과제 예산'이다. 100대 국정과제에 집중해 늘릴 분야는 확실하게 늘리고, 뺄 분야는 과감하게 뺐다. 28조4000억원의 '역대급 증액'이 무색할 정도로 분야별 부익부 빈익빈이 뚜렷하다.
일자리를 포함한 복지, 교육, 일반·지방행정 예산은 작년보다 10% 넘게 늘렸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은 20%, 문화 예산은 8.2%를 삭감해 관련 업계 반발이 불가피 해 보인다. 또 정부가 혁신성장을 국정과제로 내걸고도 예산은 기대에 못 미쳐 4차 산업혁명 대응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향후 5년간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한다. 계획대로면 2021년 예산이 사상 처음 500조원을 돌파한다. 불과 5년 만에 100조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중기 재정지출 계획을 성공적 지출 구조조정과 세수 호황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실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는 '사상 최대 증가', SOC는 '사상 최대 감축'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이미 짜놓은 계획대로 올해 예산을 운용해야 해 손발이 자유롭지 않았다. 이번 내놓은 2018년 예산안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 첫 예산이자, 국정과제 이행 첫 해 가계부인 만큼 이전 정부와 색깔을 분명하게 차별화 했다.
정부는 예산안의 기본 방향으로 '새 정부 정책과제의 차질 없는 이행 및 사람중심 지속성장 경제 구현을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 추진'을 제시했다. 실제 지출 계획도 100대 국정과제 위주로 선택·집중해 편성했다.
분야별로 보건·복지·노동(이하 복지) 분야 예산 증가가 가장 눈에 띈다.
복지 예산으로 올해보다 16조7000억원 많은 146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증가율(12.9%), 증가폭(16조7000억원) 모두 사상 최대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초로 복지 예산이 정부 총지출의 3분의 1을 넘었다”며 “복지 예산은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복지 예산에 포함된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조1000억원(12.4%) 많은 19조2000억원이다. '일자리'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한 만큼 가능한 재원을 모두 투입하기로 했다.
청년, 신중년,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등 대상별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청년 일자리 관련해서는 성장 유망 업종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때 1명분 임금을 지원하는 사업 확대가 눈에 띈다. 내년 신규 2만명을 지원해 6만명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기재부는 “청년 일자리 예산은 올해 2조6000억원에서 내년 3조1000억원으로 20.9%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교육 예산은 올해 57조4000억원에서 내년 64조1000억원으로 11.7% 늘렸다. 국방비 증가율은 6.9%를 기록해 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반·지방행정 10.0%, 외교·통일 5.2%, 공공질서·안전 4.2%, 연구개발(R&D) 0.9%, 농림·수산·식품 0.1% 등 총 12개 분야별 분류 가운데 8개 분야 예산을 증액했다.
반면 SOC, 문화, 환경 등 예산이 삭감돼 관련 업계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 정부에서 내홍을 겪은 문화예술계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음에도 예산이 대폭 삭감돼 '문화융성 정책 지우기'라는 지적을 받는다. SOC 예산은 올해 22조1000억원에서 17조7000억원으로 4조4000억원(-20.0%) 삭감했다. 1994년 이후 정부는 총 5번 SOC 예산을 감축 했는데 이번이 최대 규모다.
◇미흡한 '혁신성장'
핵심 국정과제임에도 혁신성장 부문은 예산 투입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이 0.7% 삭감했다. 세부적으로 산업진흥·고도화 부문이 올해 8조9671억원에서 내년 8조6953억원으로 줄었다. 산업기술지원 부문도 1조4482억원에서 1조4153억원으로 감소했다.
예산을 줄인 만큼 눈에 띄는 사업도 적다.
주요 사업으로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기술개발 투자 확대(2017년 1조2000억원 → 2018년 1조5000억원) △팁스(TIPS) 지원 대상 확대(2017년 150개팀 → 2018년 284개팀) △혁신형 창업공간 '크리에이티브 랩' 설치(예산 349억원) 등을 꼽았다.
그러나 신사업이 두드러지지 않고, 신규 사업인 크리에이티브 랩 설치는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차별화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구윤철 기재부 예산실장은 “크리에이티브 랩은 젊은이들이 자유분방하게 (창업 관련 활동을)하는 곳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접근이 다르다”며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은 별도 반영했는데 대기업과 사업 동력이 약화된 부분은 제외했다”고 말했다.
혁신성장 정책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돈보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산업분야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면 표현이 거칠지만 쥐약이 될 수도 있다. 기업과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부족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 혁신성장에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지출 늘려도 재정건전성은 유지…“가능할까?”
정부는 내년 예산안과 함께 향후 5년간(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장기 가계부'다.
정부는 내년 429조원까지 늘린 지출을 2019년 453조3000억원, 2020년 476조7000억원, 2021년 500조9000억원까지 확대한다. 총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5.8%다. 기존 2016~2020년 계획(연평균 3.5%)보다 크게 높다.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돈 풀기'가 가능한 근거로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과 '세수 호황'을 꼽았다. 그러나 지출 구조조정과 세수 호황이 매년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불요불급 사업을 정비해 내년 총 11조5000억원을 구조조정 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했다”며 “(국정과제 이행) 첫 해 확실한 구조조정으로 재정 여력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세출 구조조정은 첫 해가 가장 힘들다”며 향후 5년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7~2021년 재정수입(국세·세외·기금 수입)은 연평균 5.5% 증가를 예상했다. 특히 국세수입이 연평균 6.8%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지적이다.
지출이 많지만 수입으로 상당 부분 충당해 재정건전성 유지도 문제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39.7%에서 2021년 40.4%로 0.7%P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도 2017~2021년 기간 -2% 내외에서 관리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확장 재정정책에 대한 우려와 관련 “지금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재정건전성 보다 중요하다”며 “쓸 곳에 예산을 써서 장래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 줄일 수 있다면 이게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