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는 31일 통상임금 소송 1심 재판에서 4223억원의 소급 지급 선고 직후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기아차 측은 “청구 금액 대비 부담이 줄었지만 현 경영 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면서 “특히 '신의칙(신의성실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신의칙'에서 갈렸다. 통상임금 소송은 유사 건이라 해도 심급에 따라 '신의칙'이 인정됐다가 부정되고, 반대로 부정됐다가 인정되는 등 재판부마다 판결이 엇갈린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명확한 법 규정이 없으며, 판례에서도 구체화한 지침을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의칙이 적용되면 회사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추가되더라도 과거 임금까지 근로자에게 지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재판부에 따라 소급 지급에 따른 사측의 경영·재무 부문의 타격 정도를 달리 판단하기 때문에 판결은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소송은 1심에서 부정된 신의칙이 2심에서 인정됐고, 동원금속의 경우 1심 천안지원이 인정한 신의칙을 2심 대전고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 역시 울산지법은 1심에서 신의칙을 부정했지만 부산고법은 신의칙을 인정했다. 이처럼 통상임금 판결은 법 규정과 판례 지침이 없다 보니 매번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회사의 재정 상태를 판단하기 위한 지표 역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당기순이익 적자, 대규모 영업 손실, 워크아웃 등 회사 재정상 어려움을 입증했다 하더라도 신의칙이 부정되는 경우도 많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 3분기에 대규모 영업 손실을 기록했지만 신의칙은 부정됐고, 대유위니아 역시 2014년에 17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지만 신의칙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신의칙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대법원에서 정리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 위태' 초래 정도가 어느 정도 범위인지에 대한 해석을 두고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은 지난 8월 22일 '자동차 산업 진단과 대응 간담회'에서 “통상임금 관련 노동부 지침과 법이 달라서 이런 문제(고무줄 적용 신의칙)가 생긴다”면서 “하나로 정리해서 불확실성을 없애 달라”고 호소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