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계에 때 아닌 '홀대론'이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지만 산업 분야 육성·진흥책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제정책이 일자리 창출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뒀다. 정작 일자리 창출의 '모범지'라 할 수 있는 산업과 기업 분야는 방치됐다.
새 정부 경제 정책의 큰 방향성 또한 '공정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일대 전환하고, 불공정 거래관행 근절을 통한 공정한 성장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계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치우진 공정경제 정책에 산업계와 기업인의 활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발언을 했고,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한날 동시에 덮친 이들 이슈는 우리 경제에 또다른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산업'은 국정 과제 우선 순위에서 점점 더 밀려난다.
기업 관계자는 “비정규직 제로화,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블라인드 채용 등 계속해서 기업에 부담주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며 “정부 눈치 보기도 바쁜데 북한리스크까지 불안요소가 겹쳐 경영활동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자리·복지'에 매몰된 경제정책…산업육성책은 '제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난 100일 간 주요 정부정책으로 총 55건을 발표했다. 이 중 정부 조직과 경제, 재정, 조세 등 주요 국정 방향을 밝힌 게 네차례다. 일자리와 경제 관련 정책 발표가 각각 11건과 9건이다. 노동과 복지 정책은 각각 5건씩이다.
외형으로는 경제 정책이 균형있게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다르다.
경제 분야에서 다뤄진 정책은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영세 지원 대책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 △가맹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 △대규모 유통업체와 중소납품업체간 거래관행 개선방안 등이다. 민생분야 경제정책으로는 △물가 대응방안 △법정 최고금리 인하 △통신비절감대책 등이 다뤄졌다.
산업 측면에서는 군산지역 지원대책 마련이 유일하다. 선박신조 수요 발굴 지원과 조선 협력업체 금융지원, 조선업체 퇴직 근로자 재취업 등이 포함됐다. 반면 최소 10조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에는 정부가 손도 못대는 실정이다.
산업 진흥과 육성 차원의 정책은 전무했다. 100일 이후 추진된 정책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행정부처에 업무 지시를 내린 내용에서도 '산업'은 없었다. △일자리위원회 구성 및 일자리 상황 점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근본적〃종합적 대책 수립 △AI 종합대책 마련 △살충제 달걀 범정부 종합 관리 △국가 재해재난 대응체계 마련 등이 주요 내용이다. 몰카 범죄 근절 대책은 이례적으로 두 차례레 걸쳐 대통령 업무지시가 이뤄졌다
업계 관계자는 “일자리 만들기가 최우선인 정부에서 제조업이나 양질의 일자리를 생산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 의지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며 “정부가 멍석만 잘 깔아주면 산업 발전과 함께 고용 창출로도 이어지게 할 수 있을텐데, 정책이 균형적으로 설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4차산업혁명위는 관심 밖…ICT 홀대론 다시 재현되나
이달에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공식 출범한다. 문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 초기 유일한 산업진흥책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거스를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논의하는 대통령 소속 기구다.
하지만 당초 설립안에 비해 위상이 크게 낮아진 것은 물론이고 출범 시기도 8월에서 한 달 가량 늦어졌다. 운영안도 대폭 변경됐다. 위원회 참여 부처 장관이 14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동력이 약해졌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민간 주도'라는 취지를 살리고, 보다 속도감 있게 운영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설명이다.
조풍연 한국SW·ICT 총연합회 상임공동대표는 “민간은 별도의 자문단을 구성해서 보충할 수 있지만 정부부처 참여를 낮추면 그만큼 국정과제에서 관심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장관이 바쁘면 차관이라도 대신 참석하게 해 부처 관심을 이끌어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외에 가시화된 문 정부 산업육성 정책은 없다. 과학기술·ICT 산업은 4차산업혁명위원회 설치만으로 해결된다는 분위기다. 위원회를 통해 ICT산업은 물론 혁신성장 추진과 미래비전 등을 모두 설계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장 ICT업계를 비롯한 산업계는 신명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신산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고, 기업의 체질을 개선시켜야 한다. 미래 먹거리 만드는 데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뒷받침해줘야 한다. 정부의 미시적 산업 육성 대책이 요구된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산업 지원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인 429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편성했지만 3분의 1을 일자리·복지에 반영했다. 산업·SOC 분야 예산이 대폭 줄었다. 미래 성장동력인 '혁신성장' 예산은 전체 예산 중 0.4%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일자리창출을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산업경쟁력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핵심축인 ICT산업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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