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기술은 나노미터(10억분의 1) 크기 물질을 기초로 산업이나 실생활에 유용한 소재나 제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나노 기술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정밀화와 신공정 개발을 주도했다.
나노 기술은 겉으로 확인하긴 힘들다.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 산업에 새로운 '시장의 룰'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히든테크롤로지'로 인정 받아왔다. 물에 씻어도 되는 '방수 스마트폰', 세계 최초로 EUV 노광 기술을 도입한 반도체, 전력 손실을 줄인 '초전도 송전' 등 기존 산업을 한층 도약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나노 소재 탄소나노튜브(CNT), 그래핀 등은 초경량, 고강도 성질로 현재 다양한 고전도성 복합 소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산화물 나노 소재는 광학 필름 소재나 환경 정화용 소재, 금속, 반도체 입자, 디스플레이와 조명, 태양광 등 다방면에 응용된다. 에너지 전극 분야에서도 나노 소재 활용 범위가 지속 확대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기 간 연결,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과 서비스 탄생을 촉발시킨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초고속화, 대용량화, 저전력화 등이 핵심 산업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나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물인터넷(IoT)용 센서,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칩, 인공지능(AI)용이나 빅데이터용 전용칩, 나노소자 등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모든 산업 혁신에서 소재가 필수 기술이면서도 병목 기술이다. 한번 개발하는데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지만 개발 완료 후 적합한 수요처에 적용될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많은 나라에서 나노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매해 나노 산업에 조단위 투자를 한다. 나노를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하는 글로벌 기업도 늘고 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산업 씨앗 '차세대 나노'에 갖는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나노 기초기술, 중장기 시각으로 꾸준한 투자 필요
나노 기술은 전자, 에너지, 항공, 바이오, 재료 등 모든 산업분야에 응용 가능한 기술이다. 새로운 나노 기술 개발 하나가 산업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다.
나노 기술은 소재 기술 특성상 연구개발이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비 인프라가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개발 비용이 높다.
나노 기술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이에 적합한 응용 제품과 상용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실험실 속'에만 머물게 될 우려도 있다.
나노 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은 세계 실물 경제 둔화로 기초과학과 나노 기반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국내 나노 기업이 대부분 영세하다보니 지속적 기술개발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초기 투자비용과 성과로 이어지는 개발 시간 때문에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하나의 나노 기술에만 매달릴 수 없다. 국내 나노 기업 대다수는 중소기업이다. 정부나 산업계 등에서 꾸준한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민구 서울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10개의 나노 기술 중 1개라도 시장에 나와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경제성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산업계에 씨를 뿌린다는 마인드로 나노 기초 산업에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노기술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기존 산업군을 새롭게 도약시키는 전환점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1~2년 내 뭔가 나오리라고 조급하게 기대하기 보다는 5년에서 10년 이상 중장기 시각을 가져야한다. 자동차, 디스플레이, 반도체 시장에 도약점을 만들어줄 핵심 요소를 나노가 이끌고 있다”면서 “창조적 파괴를 이루는 나노 산업 중요성은 세계적으로 크고 사용처도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은 “정부는 신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조기에 사업화하는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면서 “새로운 가치사슬이 완성되도록 체계화한 기술사업화 시스템을 구축해 사업화 성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나노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지기까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박 단장은 “새롭게 탄생한 나노 소재는 신기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사업화되지 않는다”면서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는 공정 기술이 함께 개발될 수 있는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노 소재 개발 정책 효과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발휘될 수밖에 없다. 투자 시점을 놓치거나 정책 실패는 중장기 경쟁력 상실로 나타날 수 있다.
◇기술과 기업 간 매치가 관건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나노 기술은 수요 기업과 이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혁신 나노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이를 상용화시킬 제품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가로 막는다. 나노 기업은 대부분이 중소업체다. 나노 기술을 채택, 제품화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은 주로 대기업이다. 수요기업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체계적인 비즈니스 매칭(연결)이 쉬운 일이 아니다.
최영진 세종대 나노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나노 기업은 소재나 부품에 주로 특화돼 있기 때문에 이를 가져다 써줄 수 있는 수요기업과 연결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특히 생산 수량이 많은 대기업과 연계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하지만 대기업은 특성상 증명되지 않은 첨단 제품에 접근성이 떨어진다. 신기술을 수용하는데 다소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소재나 부품 성능의 공신력을 갖고 평가할 수 있는 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기업이 중소업체가 개발한 나노 기술을 채택하지 않는 이유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최 교수는 “나노 기술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검사, 인증할 방법이 지금껏 마땅치 않았다”면서 “정부가 나노 기술을 인증, 검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 나노 전문기업이 수요기업과 연계돼 제품 판로를 개척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차원에서는 나노 기업과 수요기업을 연계하는 T2B센터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나노 기업이 수요기업을 만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T2B센터는 현재 수원 본원과 대전 지역 2곳이 있다. 센터는 나노 기업을 발굴, 제품 성능을 검증한다. 검증 받은 나노 제품은 T2B센터에 상설 전시돼 수요 기업은 언제 어디서든 나노 제품을 직접 보고 사업화를 추진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나노 기술 수요를 높일 수 있는 산업적 토대가 마련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응숙 나노기술연구협의회 부회장은 “나노는 하나의 제품으로만 구현되고 마는 게 아니라 많은 것을 가능케 하고 활용될 여지가 많은 기반 기술”이라면서 “산업계에서 나노를 요구하는 상품이 많이 나와 제품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안착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나노 업계 관계자는 “나노는 경량화 복합소재로 만든 미래형 하이브리드차, 고기능과 친환경 기능을 두루 갖춘 스마트 섬유, 지능형 로봇 등 첨단 분야에서 활용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면서 “나노기술 기업과 수요기업 간 활발한 매칭으로 국내 나노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한다”고 주문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