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부처 장관은 보통 세 부류다.
젊은 시절 공직에 입문해 20~30년 경력을 쌓은 관료이거나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 대학에서 지식과 경험을 넓힌 교수 출신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이 약진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산업계나 문화·체육계 출신도 있지만 이 역시 가끔이다.
세 부류는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
관료 출신 장관은 해당 부처의 숟가락, 젓가락 수까지 알 정도로 조직과 업무 이해도가 높다.
정치인 장관은 '파워'가 장점이다. 국회 영향력이 커지는 게 현실이다.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오면 대 국회 관계에서 득이 되지 실이 되진 않는다.
교수 출신 장관은 전문성이 강점이다. 해당 분야에서 쌓은 내공이 만만치 않다. 이론 배경을 바탕으로 세밀한 정책을 수립한다.
단점은 뺄셈하듯 장점을 빼면 나온다. 관료 출신은 대 국회 관계에서 불리하다. 정치인 장관은 내부 소통 부족으로 제대로 된 팀워크 문화를 조성하기 어렵다. 국회로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안목이 길지 않다. 교수 출신은 관료와 정치인이 가진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 교수로서 학생을 상대하는 것과 장관으로서 직원, 국회를 대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욕심 같아선 세 부류 경험을 모두 갖춘 사람을 장관으로 기용하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도덕성 무결점과 바람직한 역사관 등도 필수 항목이니 장관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시스템에 또 제동이 걸렸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사퇴 논란이 겨우 수습되면서 9부 능선을 넘었다 싶었는데 지난 13일 국회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보고서를 채택했다. 결국 박 후보자는 15일 자진사퇴했다.
중기부 장관 인선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의 마지막 단추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박 후보자는 대학 교수지만 대기업과 벤처기업 근무 경험도 있다. 부족한 공직, 정무 경험은 차관이 채워 주면 될 일이었다.
새로운 불똥이 튀었다. 역사관,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업무 수행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숨겨진 변수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분명 청와대의 실책이다.
사전 인사 검증에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청와대는 박기영 사태 때 '황우석'이라는 꼬리표의 파급력을 간과했듯 박 후보자를 놓고는 '창조과학'과 '역사관'에 대한 국민 인식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다. 박 후보자의 역사관과 신앙이 문제없다고 확실히 결론 내린 것인지, 인사 검증 때는 아예 모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국회 부적격 보고서 채택 후에도 '지켜보고 있다'는 반응 정도였다.
중기부 장관 지명은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청와대가 원하던 기업인이 모두 고사하면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 후보자가 27번째 중기부 장관 후보였다고 했다. 그만큼 장관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28번째 선택을 해야 한다. 새로운 장관 후보자를 고를 때 이전의 실패를 곱씹어야 한다. 높은 지지율만으로 인사를 밀어붙일 수는 없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인사를 택해야 한다. '기업인' 또는 '교수'로 인재 풀을 제한할 이유도 없다. 적합한 인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중기부 장관을 두고 또 한번의 선택은 없기를 바란다.
이호준 산업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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