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됐다. 세계 최초의 벤처특별법은 당시 코스닥과 함께 1차 벤처 붐을 이끌었다. 단순히 이스라엘 벤처 생태계의 벤치마킹을 넘어 한국만의 독자 생태계를 갖췄다.
벤처는 1998년 벤처확인제도가 시행되면서 경제 전면에 등장했다. 대기업과 국가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 역할을 해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성공 벤처도 이때 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글로벌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벤처에도 위기가 닥쳤다. 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생겨났다. 벤처업계는 이후 10년이 넘게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동안 체질 강화에 힘썼다. 외형 키우기보다 내실을 다졌다.
최근 벤처 위상이 달라졌다. 2000여개에 불과하던 기업 수는 3만개를 넘어섰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혁신 기업이라는 의미에서 성장 기반을 갖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정부 부처 명칭에도 벤처가 쓰였다. 그만큼 벤처가 국내 경제에서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올해 말 일몰 예정으로 있던 특별법은 10년 유예됐다.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벤처기업이 유효한 셈이다.
◇벤처, 국가 경제를 이끌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벤처기업 수는 3만3360개다. 1998년 벤처확인제도가 시행된 이후 무려 16배 증가했다. 총 매출은 2015년 기준 21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국내총생산(GDP)의 13.9%를 차지한다.
그 사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벤처기업이 474개로 늘어났다. 매출 1조원 기업도 6개다. 고용 효과도 적지 않다. 벤처기업의 고용 인원은 72만8000명이다. 기업당 23.3명이다. 일반 중소기업 평균 종사자 수의 5.8배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집중 육성하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의 77%가 벤처 출신이다.
코스닥 상장 기업 가운데 벤처 출신 기업 비중도 70%에 이른다. 벤처기업이 코스닥 시장의 핵심 기업군으로 자리매김했다.
◇성장 가능성에 투자는 여전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경제 침체에도 올 상반기 벤처 투자 규모는 9926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 증가했다.
업력이 7년 이내인 스타트업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4.3%포인트(P) 증가한 77.3%를 기록했다. 특히 투자받은 기업 절반의 업력이 3년 이내인 창업 초기 기업이다. 2013년부터 조성한 창업 초기 기업의 투자펀드 영향이라고 중소벤처기업부는 분석했다.
투자 금액은 창업 초기 기업이 3698억원, 창업 3~7년 기업은 2920억원으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업종별로는 유통서비스가 2.9%P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전기·기계·장비가 2.2%P, 정보통신기술(ICT)서비스가 2.1%P로 뒤를 이었다. ICT 제조는 0.6%P 증가에 그쳤다. ICT는 투자자 관심이 제조에서 서비스로 옮겨 갔음을 알 수 있다.
벤처펀드 신규 결성액은 56개 펀드 1조4163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7530억원에 비해 19.2% 감소했다. 추가경경예산 소식이 전해진 후 펀드 결성을 보류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벤처펀드 추가 조성 소식도 투자 전망을 밝게 한다. 역대 최대 규모인 모태펀드의 추경 예산 8000억원이 편성됐다. 1조3000억원의 벤처펀드가 추가되면서 하반기에 벤처펀드 규모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구가 안 보인다
문제는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다는 데 있다. 벤처 업계에서 엑시트는 투자 회수를 뜻한다. 창업은 쉽고 투자도 여전히 몰리고 있지만 투자 회수가 어렵다. 투자 회수가 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요원한 상황이다.
출구가 막힌 이유는 경직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M&A를 통한 회수 비율은 2014년 2.1%에서 2015년 1.5%로 2016년 3.1%에 그쳤다. 미국의 80%와 큰 차이를 보인다. 회수 시장이 IPO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창업, 투자와 달리 중간 회수 시장인 M&A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수하려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수 대상 기업의 기술평가액 10%만 매수 기업 법인세에서 공제한다. 이마저도 벤처기업, 이노비즈 기업 등 기술 혁신형 기업을 인수해야 혜택을 받는다. M&A를 연구개발(R&D)로 보기 때문이다.
인수 금액이 세법상 시가의 150%를 넘으면 기술 가치는 기술평가기관의 평가액이나 인수 가액에서 세법상 시가의 130%를 뺀 금액만큼만 인정받는다. 김기사를 만든 록앤올이 카카오에 인수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이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벤처캐피털(VC)도 뛰어들기가 꺼려진다. VC 대부분의 만기가 도래할 시점에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피투자 벤처 기업이 IPO 단계가 아니면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 IPO 단계라 해도 주식 시장이 침체면 곤란하다.
벤처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스톡옵션 행사 때 부과되는 세금이 무겁다. 상당 부분 완화됐지만 여전히 양도소득세로 22%를 내야 한다. 투자 회수로 인한 재창업과 재투자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M&A에 대한 부정 인식도 문제다. 회사 성장보다는 매각에 따른 이익 시현으로 보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때 회사를 매각하지 못하면 기술이 노후화돼 사장될 수도 있다”면서 “투자 회수를 큰 위험에 따른 성공 보수로 인정해 주는 인식과 정책이 곧 창업 유인책”이라고 말했다.
<표>벤처 1000억원 기업 성과(단위:개, 억원, 명)
<표>대기업이 바라보는 M&A 장애 요인(자료:SERI)
<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 집단(일반집단, 지주회사) M&A 규제>
유창선 성장기업부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