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슈뢰더 전 독일 총리 방한이 남긴 아쉬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지난주 2박 3일의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슈뢰더 전 총리는 자신의 자서전 한국어판 출판에 맞춘 짧은 방문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 산업계 인사들을 만나고 대규모 강연도 열었다. 이런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갔는가 하면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를 시민과 함께 관람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떠났다.

이런 슈뢰더 전 총리의 방한은 필자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그가 재임 시기(1998~2005)에 실행한 많은 개혁 조치를 다시 경청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 정책(제이노믹스)에 도움을 주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독일의 슈뢰더 개혁이 제이노믹스에 미치는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1990년 10월 동·서독 통일에 따른 재정 악화, 국내 산업 공동화, 저출산·고령화, 과도한 사회 보장과 노동 규제 등으로 산업 경쟁력을 잃었다.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8년에 취임한 사회민주당(SPD)의 슈뢰더 총리는 유럽연합(EU) 시장 확대를 노리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기반으로 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사회 보장 개혁, 의료제도 개혁, 노동 개혁 등을 포함한 '슈뢰더 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어젠다 2010'으로 불리는 슈뢰더 개혁은 한마디로 '고통의 구조 개혁'이었다. 독일은 개혁에 성공하면서 EU의 리더로 도약했다.

'슈뢰더 개혁'이 밑거름이 된 독일의 국가 경쟁력 전략은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인더스트리 4.0'으로 한 단계 올라서서 현재 진행형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경쟁력을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

첫째 정치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정치 안정을 들 수 있다. 슈뢰더 총리는 연립정권과 연립 협정을 통한 정치 안정을 토대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같은 방식으로 슈뢰더 총리의 정책을 계승, 정책의 연속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둘째 구조 개혁 추진 지속이다. 독일은 민간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지속된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기업 활동에 수반되는 코스트의 철저한 절감과 경영 자원의 효율 활용을 꾀하고 있다.

셋째 기술 혁신 강화와 산·학·관 협력을 통한 중소제조업 육성이다. 기업의 기술 혁신 역량과 산·학·관 협력이라는 인프라가 제조업의 강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넷째 국내외 인재 활용을 들 수 있다. 전통의 마이스터 제도를 비롯해 인재 육성 시스템을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다. 중동부 유럽, EU 밖의 국가에서도 고학력·고기능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

독일과 우리 사정은 다르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독일 경제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슈뢰더 개혁에서 제이노믹스가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은 노동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업난 타개를 위해 '노동 안정성(security)'을 정책의 중심에 놓고 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 돌파에 필요한 조지프 슘페터형 혁신 경제로 가려면 '노동 유연성(flexibility)'도 숙고해야 한다. 시장 경제 아래에서 전통으로 노동자를 엄격하게 보호하는 독일은 북유럽 국가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도입한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 개념을 끌어들여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꾀하는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

'인더스트리 4.0'이 우리 노동 정책에 미치는 의미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할 때부터 노동조합을 참여시켰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 추진 조직인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의 정치 거버넌스에 노동조합이 정부ㆍ산업계와 나란히 참여하고 있다. 운영위원회와 워킹그룹을 통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참여 없이 '인더스트리 4.0'이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우리가 처한 국내외 경제 및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유럽의 승자'로 올라서게 만든 슈뢰더의 개혁과 독일의 경쟁력 강화 전략, '인더스트리 4.0'에서의 노동조합 참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곰곰이 살펴볼 시점이다.

[곽재원의 Now&Future]슈뢰더 전 독일 총리 방한이 남긴 아쉬움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