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 달 이상 끌어온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24일 발표했다. 이 덕분에 출연연은 정규직 전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최대 쟁점인 '공개경쟁(경쟁 채용)' 도입의 책임 소재를 떠안게 됐다. 이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기관별 '각개전투' 상황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기정통부 가이드라인은 기존의 정부 공통 가이드라인(고용노동부 주도)을 구체화하고, 연구기관의 특성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 효과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 안정이라는 정부 정책의 취지를 살리면서 연구기관의 특성을 균형 있게 담으려 노력했다.
연중 9개월 이상, 앞으로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기존에 근무하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기본이다. 안전 관련 위험물 취급 업무도 정규직화를 주문했다.
연구직이란 특수성 때문에 지속성 판단이 어려운 경우 참고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했다. 연구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채용한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통상 계약을 연장해 가며 다년간 다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 상시·지속 업무로 간주한다.
문제는 경쟁 채용이라는 '예외' 허용 방식이다. 경쟁 채용 도입 여부를 기관별 전환심의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전환심의위는 출연연별로 구성된다. 기관 사정에 따라 경쟁 채용 범위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전환심의위가 노사 간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짙다. 경쟁 채용은 새로 생기는 정규직 일자리를 두고 기존 비정규직과 취업 희망자가 경쟁하는 방식이다. 기관은 연구 역량 강화를 이유로 찬성한다. 노조는 원칙 파기를 이유로 반대하는 사안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경영진이 공개 채용 범위를 자의로 해석,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추 의원은 “연구 전문성을 이유로 공개 채용 가능성을 열어 놨지만 전환심의위 자체가 경영진 위주로 구성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참여가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과기정통부는 전환심의위가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전환심의위에 외부 인사를 절반 이상 참여시킬 것을 권고했다. 외부 인사는 인사 노무 및 노사 관계 전문가,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로 구성하도록 했다. 전환심의위가 기관별 전환 계획을 확정하기 전에 과기정통부와 협의하도록 했다.
유국희 과기정통부 연구성과정책관은 “모호한 용어가 일부 있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해석 범위도 넓어질 수 있지만 중점을 둔 것은 프로세스(결정 절차) 공정성”이라면서 “최대한 많은 근무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고, 거기에 추가로 경쟁 채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견, 용역 등 간접 고용 근로자는 기관별로 별도의 '정규직 전환 협의 기구'를 구성, 전환 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 기존 용역 업체와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 전환 계획을 가동한다. 이 과정에 노·사·전문가가 합의하도록 했다. 기관이 직접 고용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해서 고용하는 방식 가운데 합의에 따라 정한다.
학생연구원, 박사후연구원은 '연수직'으로 별도 분류, 처우를 개선키로 했다.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적정 임금 체계 마련과 복리 후생 개선이 골자다. 연구 수행 기간에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과제 기반 테뉴어 제도'도 도입한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이 상시·지속 업무를 신설하거나 결원이 발생할 때 처음부터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유도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발표 즉시 출연연에 전달해 전환심의위, 전환협의기구 등이 조속히 구성·운영될 수 있도록 한다. 현장 설명회 개최, 문의 게시판 운영 등 후속 조치도 이어갈 계획이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