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 신규 원전과 계속운전 원전 운명이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는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통해 신규원전 백지화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공식화했다.
미래 주요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의 필요성이 유효하다는 측면에서 정부 방침을 두고 반발이 거세다. 원자력계와 야권은 일방적인 결정이 법적으로 타당한지에 문제를 제기했다. 공론화로 신고리 5·6호기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강행이 '제2의 신고리' 갈등을 키우는 모습이다.
정부 탈원전 정책에 쟁점으로 부상한 원전은 신규 건설 계획으로 잡혀있던 신한울 3·4호기와 2015년 계속운전 결정이 내려진 월성 1호기다. 최근에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지을 예정이었던 천지 1·2호기도 거론된다.
정부는 앞서 신규 원전 6기 백지화 방침을 통해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건설계획을 취소할 뜻을 밝혔다.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신고리 5·6 건설 중단 공약이 이뤄지지 않자 오히려 탈원전 기조를 강하게 추진하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여당 쪽에서는 월성 1호기에 대한 공세를 벌이고 있다. 고리 1호기가 계속운전을 마치고 폐쇄한만큼 계속 운전 중인 월성 1호기를 신고리 5·6호기를 대신해 현정부의 탈원전을 상징할 타깃으로 정조준했다.
명분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전 중인 유일한 계속운전 원전인데다, 중수로 방식으로 다른 경수로형 원전보다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이 많다. 최근에는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공간이 부족해, 추가 저장시설 건설을 놓고 지역민과 마찰도 있다. 올해 2월에는 원전 지역 주민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낸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까지 했다.
청와대와 여권은 이번 정부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 더이상 계속운전 원전은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원자력계도 월성 1호기의 폐로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공론화 과정에서도 '신규원전 취소'보다는 '노후원전 폐기'를 주장했다.
반면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에 대해선 원전산업 유지와 기술확보 차원에서라도 계획이 유지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한울 3·4호기가 취소되면 영국·체코 등 해외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이후 산업의 공백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쓰리마일 원전 사고로 장기간 신규 원전건설을 중단한 이후 관련 산업의 명맥이 끊기면서 다른 나라의 기술과 인력을 수입한 상황이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천지 1·2호기는 처음으로 3.5세대 원전으로 평가받는 APR+가 적용된다. 기술과 안전성 강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이들 원전 계획을 취소하는 데에는 신고리 공론화 때와 마찬가지로 법리적 해석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계속운전 취소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월성 1호기는 정부의 조기 폐쇄방침이 자칫 사법부 관섭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산업부가 계속운전 정지 협조요청을 보내고 한수원이 이사회 의결을 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예상된다. 안전상 결격사유가 없는 원전을 임의 폐쇄하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 논란이다.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는 아직 전원개발실시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 전원개발실시계획승인은 자격여건만 갖추면 사업자에게 허가를 내줘야 한다. 이들 계획을 취소하기 위해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관련 내용을 담아야 하는데, 국회 보고 절차가 있어 쉽지 않다.
손실 비용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신고리 5·6호기와 마찬가지로 신한울 3·4호기와 천지원전에도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투입됐다. 야권은 신규원전 건설 중단시 매몰비용이 부지매입비, 설계용역비, 지역지원금, 협력사 배상비용 등을 합쳐 총 9955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수원은 현재 신한울 3·4호기 관련 부지매입과 설계시공 용역에, 천지 1·2호기 관련 일부 부지매입에 비용을 지출한 상황이다. 월성 1호기도 계속운전을 위해 노후관 교체 등 5600억원을 들여 설비를 교체했지만, 2015년 계속운전 결정 이후 2년만에 폐쇄가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탈원전이 세계 추세이고 대선에서 주요 정책 공약이었던 만큼 변화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탈원전은 지난 대선 정책 공약으로 국민 대다수가 공감했고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공론화 결과에서도 같은 선택을 내렸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은 흔들림 없이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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