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협동로봇 활용을 위한 세부 안전 규정을 마련한다. 협동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새로운 개념의 로봇으로 대두되면서 협동로봇 안전성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인체 접촉 환경에서 운용되는 로봇의 안전 관련 국제표준 기반 기능 안전성 구현 기술 및 위험도 평가·저감 기술 개발' 과제 접수를 마감했다. 산업부는 조만간 제안서를 검토한다. 산업계의 입장이 반영된 안전 인증 방안이 내년이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허가하지 않은 협동로봇에는 방책과 안전매트를 설치해야 한다. 협동로봇 자체 안전성은 검증할 수 있지만, 협동로봇 시스템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검증할 세부 기준과 인증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과제 목적이다. 협동로봇 자체 안전성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것도 좀더 구체화한다.
협동로봇은 산업용 로봇과는 다른 차원의 로봇이다. 산업용 로봇은 사실상 중장비 수준으로 대형화, 자동화된 로봇이다. 산업용 로봇은 규모가 크고 움직임이 빠르다. 사람이 부딪히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산업용 로봇 주변에 사람 접근을 통제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로봇 설비를 구비한 사업주는 산업용 로봇 주변에 1.8m 이상 방책과 안전매트를 의무로 설치해야 한다. 사람이 작업 반경 안에 접근하면 작업 중인 산업용 로봇은 즉각 작동을 멈춰야 한다.
협동로봇은 산업용 로봇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의 작업을 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용도에 최적화됐다는 점이 기존 로봇과 다르다. 사람에게 근접해서 작업하는 만큼 기존의 안전 규정 그대로 협동로봇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업계와 정부의 공통된 시각이다.
문제는 협동로봇 활용 관련 안전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수요 기업으로서는 활용이 제한되고, 제조 기업으로서는 영업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협동로봇 단품은 한국산업표준(KS)에 부합하는 조건에 맞춰 로봇 제조 기업이 제조, 판매한다. 현재 로봇 기업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협동로봇을 생산하면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수요 기업이 용도에 맞게 부가 모듈을 부착, 시스템화해서 사용하는 방안에는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수요 기업으로서는 협동로봇을 설치해도 모듈을 달지 못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칫 법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업계-사용자 “협동로봇 활용 세부 규정 시급하다”
고용노동부령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 제223조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로봇의 안전 기준이 산업표준화법 제12조에 따른 한국산업표준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 기준 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본문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협동로봇 정의를 제시한 셈이다. 고용부 장관이 인정한 협동로봇은 방책과 안전매트 설치 등 의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고용부가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협동로봇을 정의하는 큰 틀은 잡혔지만 이제는 활용 방안을 규정한 세부 조항이 필요하다. 수요 기업에서는 협동로봇을 섣불리 사용했다가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로봇 기업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협동로봇의 원활한 설치를 위한 안전 검사 기준의 정의와 체계가 불명확, 난항을 겪고 있다”면서 “조속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수요 기업은 협동로봇 활용 기준이 모호해 협동로봇 활용이 제한된다고 강조한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협동로봇 정의는 갖춰졌지만 최종 사용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로봇에 어떠한 모듈을 달 수 있는지 여부”라면서 “협동로봇에 모듈을 달지 못하면 무용지물인데 이와 관련한 규정이 모호하다. 협동로봇을 구매하더라도 이용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 목숨 달린 일” 신중한 고용부, 산업계 의견 반영키로
관련 부처에서는 대책 마련에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고용부는 산업계 요청을 수용, 관련 규정을 거듭 개정했다. 고용부와 산업부는 협업을 토대로 협동로봇의 당면 과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산업부와의 협업은 고용부가 산업계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고용부에는 딜레마도 있다. 협동로봇 개념은 최근에서야 산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로봇과는 관련이 적은 고용부에는 생소한 분야다. 대책 마련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신속성을 요하는 산업계의 요청과 인명이 직결된 산업 안전이라는 본연의 임무 모두를 무시할 수 없다. 무작정 규제 개선 속도를 높일 수가 없는 셈이다.
대안으로 산업부는 정부 과제 용역을 발주, 협동로봇 관련 세부 규정을 만든다. 고용부는 산업부가 고안한 협동로봇 인증 기준을 토대로 협동로봇 사용을 허가하는 방식이다. 산업부 산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인증하면 고용부가 이를 근거로 협동로봇에 부과된 규제를 면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