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 회복]산업계, 판매 회복 및 사업 정상화 '반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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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한국과 중국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갈등으로 경색됐던 외교 및 산업 부문 교류를 정상화하기로 하면서 산업·경제계에도 화색이 돌았다. 중국의 각종 조치로 현지 판매에 부진을 겪던 자동차, 유통업계는 판매 회복 기대감이 커졌다. 중국 사업 정상화도 빠른 속도로 이뤄질 전망이다. 중국 측 후속 조치를 봐가며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신중함도 엿보인다.

◇자동차, '현지 판매·사업 정상화 속도'

한·중 관계 정상화로 가장 큰 수혜를 볼 업종은 자동차가 꼽힌다. 사드 갈등이 본격화된 지난 3월부터 급감한 중국 시장 자동차 판매가 되살아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31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들어 9월까지 중국 시장에서 전년동기대비 37.2% 줄어든 48만9340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기아차 역시 49.8% 감소한 21만2677대 판매에 그쳤다.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중국 내 합작파트너와의 관계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일단 양국 정부가 사드 배치 이후 계속됐던 갈등을 봉합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정의선 부회장도 조만간 중국으로 출장을 갈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베이징 개관식에도 나서며 현지 판매를 재점검하고 사드 갈등 봉합 이후의 전략을 다시 짜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사실 자동차의 경우 여행 부문 등과 달리 중국 당국이 그동안 공식적으로 한국산 소비를 막은 것은 아니므로, 표면적으로는 발표로 바뀐 상황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관계 정상화' 공식화가 반한(反韓) 감정 완화로 이어지면 판매가 조금씩 회복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도 사드 갈등 여파로 중국 합작공장 설립 계획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프로젝트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10월 중국 산시(陝西)기차그룹과 합자의향서(LOI)를 체결하고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 현지 완성차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사드 갈등이 불거지면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쌍용차 관계자는 “양국 관계가 정상화하면 합작 사업 논의의 상대 파트너(시안시와 산시기차그룹)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운 반응도 있다. 사드와 무관하게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중국의 자동차 관련 규제와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 움직임 등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큰 폭으로 감소한 판매량이 회복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중국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등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현지 브랜드 경쟁력이 높아지고, 중국 내 친환경차 정책 등 규제 여건이 강해지는 만큼 단기간에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통업계, '회복 기대감'

유통업계도 한·중 관계 정상화 소식에 반색했다. 롯데마트를 비롯해 그동안 중국 현지에서 불매 시위로 타격을 입은 국내 유통업체 피해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는 자사 소유 경북 성주 골프장에 사드 포대가 배치되면서 이른바 '사드 보복'의 집중 포화 대상이 됐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2월 롯데 계열사 현지 사업장을 대상으로 세무조사, 소방·위생점검, 안전점검 등 조치를 벌였다. 롯데마트 매장은 반한 불매 시위 여파가 더해지면서 87개 점포 영업이 중단됐다. 영업 중인 12개 점포는 매출이 80% 이상 급감하면서 현재까지 6000억원 이상 피해를 기록했다. 롯데마트는 중국 점포 매각을 추진하는 고육책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드 보복으로)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손실과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국과 우호적 관계 개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존 롯데마트 매각 건은 이미 진전된 사항으로 변동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제과는 지난 3월 미국 허쉬사와 합작 설립한 중국 초콜릿 공장에 생산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롯데면세점은 한국을 찾는 중국인 단체여행이 줄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사드 보복 전 중국인 관광객은 국내 면세점 업계 매출 70~80%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의존도가 높은 일부 업종은 사드 보복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면서 “한중 관계가 복원되면 서서히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온라인 유통가도 한·중 관계 개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 현지 최대 쇼핑 축제 중 하나인 '광군제'를 맞아 역직구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 판매량 확대가 예상된다. 온라인 유통가는 양국 관계 회복을 지켜보면서 중국인 고객 대상 상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다.

◇부품업계는 '신중한 대응'

부품업계는 신중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사드 보복 조치로 한·중 관계가 경색되면서 부품 분야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배터리 업계였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지난해 6월 중국 정부의 4차 배터리 모범 규준 인증에서 탈락한 이후 5차 인증을 준비해 왔지만 현재까지 심사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공신부가 발표하는 '신에너지 자동차 추천 목록'에서 제외된 이후 올해 9차례에 걸쳐 199개 기업 2789개 모델이 목록에 들었지만, 한국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은 단 한 대도 포함되지 않았다.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현지 완성차 업체가 한국 배터리 채택을 꺼리면서 LG화학과 삼성SDI 중국 공장 가동률은 한 때 10%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이 중국 베이징기차와 합작한 현지 배터리 팩 생산 공장은 아예 가동이 중단됐다.

한·중 관계가 해빙 모드에 들어가면서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공략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업계는 신중한 분위기다. 기대감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이 없는 만큼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공신부가 발표하는 보조금 목록에 한국 업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포함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사드 배치 보복 명분 외에도 중국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한국 배터리 배제 조치를 취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한·중 관계 악화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많은 피해를 본 만큼 배터리 보조금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길 고대한다”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번 조치가 관계 개선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 중국 공장 증설 요건도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관계가 회복되면서 깐깐해진 승인 심사가 다시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콘텐츠·관광도 기지개

중국으로의 게임 수출도 재개될 전망이다. 중국은 올해 3월부터 한국 게임 신규 판호(유통허가) 발급을 중단했다. 공식 제재는 아니다. 판호를 담당하는 중국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구두지시로 현지 게임사에 방침을 전했다.

판호 발급이 정상화되면 수혜를 받는 곳은 넷마블게임즈와 블루홀이 첫 손에 꼽힌다. 넷마블게임즈는 텐센트를 통해 모바일게임 '리니지2레볼루션' 중국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미 콘텐츠는 완성 단계다. 블루홀은 PC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 중국 출시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게임사도 숨통이 트인다. 인디게임사를 비롯해 중소 게임사는 올해 1분기 이후 중국 게임사와 계약 진행이 중지되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일부는 계약금 등을 확보하지 못하며 경영난에 빠지기도 했다.

중국 진출이 재개되더라도 현지 성공이 보장 된 것은 아니다. 한국 게임업계가 상대적 우위를 점한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등 고퀄리티 게임이 대형 시장 진입 시기를 미루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관광·항공업계도 반색을 표했다. 중국 노선 항공이용객은 지난 3월 전년 동월 대비 22.5%가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4월에는 47%, 7월 45.2%가 감소하는 등 매달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9월에는 해빙분위기가 다소 조성되면서 개별 여행객이 증가해 전년대비 31.1% 감소한 것에 그쳤다.

양국 갈등이 봉합 수순을 보이자 지난 26일 중국 한 여행사가 한국 단체관광 상품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했다. 단체 관광이 등장한 것은 7개월만의 일이다.

이번 합의로 금한령은 풀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관광객 수가 예전처럼 회복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영업 재개까지 최소한 3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관광업계 전망이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 문보경 산업정책부(세종)기자 okmun@etnews.com, 윤희석 유통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