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현대·기아차 中서 재도약하려면…

최근 우리나라와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갈등으로 경색된 관계를 정상화시키기로 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현대·기아자동차가 모처럼 화색을 띠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합의 발표 이튿날 곧바로 중국을 찾아 현지 법인에 힘을 실어 줬다. 현대·기아차 중국 법인은 중국국가정보센터(SIC)와 함께 한·중 자동차 산업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도 개최했다. 9월, 10월 두 달 연속 판매 감소폭이 줄면서 시장에서도 '훈풍'이 부는 것 같다.

[전문기자 칼럼]현대·기아차 中서 재도약하려면…

그러나 현실은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시장 논리가 항상 정치·외교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관계 회복이 현대·기아차 판매 정상화로 바로 연결될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 않다. 사드 갈등이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부진을 극대화시키긴 했지만 경쟁력 악화의 근본 원인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독일차보다 저렴하면서 중국차보다 성능이 좋은 '가성비' 높은 자동차라는 인식을 받았다. 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시장에 정착했고, 중국은 현대·기아차 최대 시장이 됐다. 그러나 구형 모델을 싸게 파는 방식으로 이룬 성장이 한계에 부닥친 상황에서 사드 보복까지 겹친 것이 이번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15년부터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부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현지 브랜드의 기술 수준이 높아졌고, 매년 수백종에 이르는 신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2015년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는 전년 대비 약 6.1% 줄었다. 2016년에는 중국 정부가 구매세 인하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 규모가 15% 이상 확대됐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6.7% 성장에 그쳤고, 시장 점유율도 약 0.6%포인트(P) 낮아졌다.

올해도 현대·기아차 중국 판매량은 30% 이상 급감했다. 개별 모델 판매 상위권에서 현대·기아차는 보이지 않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대·기아차의 올해 중국 판매량이 지난해의 반 토막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7~8년 전 수준인 100만대를 간신히 달성할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기아차가 다시 판매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 흐름 파악이 우선이다. 중국 역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가장 인기 높은 차종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중국에서 판매하는 14종 가운데 SUV가 4종뿐이다. 기아차 역시 11종 가운데 4종에 불과하다. 중국 현지 시장에 맞는 차량 투입이 최우선 과제다.

또 중국은 인구가 많은 만큼 자동차 산업에서도 다양한 시장이 형성돼 있다. 특히 주력 소비자로 떠오른 바링허우(1980년대생), 주링허우(1990년대생), 링링허우(2000년대생) 등 각 세대에 걸맞은 차량 라인업과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현지화 전략 2.0'을 세웠다. 중국 시장을 잘 아는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경영진과 판매망도 재정비했다. 또 취약한 SUV 비중도 2020년까지 지금보다 약 2배 늘리는 등 현지 전략형 모델도 강화한다. 최근에는 연구개발(R&D)과 상품, 마케팅 분야 인력 100여명으로 구성된 '중국 시장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도 출범시켰다. 위기를 맞고서야 살기 위한 전략 수립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 자동차 업체도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매년 낮아지고 있다. 중국 현지 브랜드가 빠른 기술 성장을 토대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본차가 중국에서 성장한 데는 중국 소비 시장을 면밀히 분석, 다양한 신차와 신기술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시장 흐름에 맞는 전략과 차종을 투입한다면 다시 호기를 맞을 수 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