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0일을 전후해 일주일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보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2008년부터 매년 노벨상 시상식에 초청 받았다. 나는 한림원장 자격으로 공식 방문했다.
스톡홀름은 '노벨 주간'이 한창일 때여서 도시 전체가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연미복과 드레스를 잘 차려 입은 사람들 사이로 스타 과학자도 눈에 띄었고, 세계에서 온 200여명의 기자들이 콘서트홀과 시청 사이를 가득 채웠다.
당시 나의 방문 목적은 시상식 자체보다 노벨재단 관계자들과 협력회의를 하고, 노벨상 심사위원들에게 한국의 과학기술을 알리는 데 있었다. 최근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한국 과학자가 많지만 국제 네트워크가 약한 편이라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국과 공동 학술 행사나 협력 프로그램을 타진하는 것이 한림원장에게 주어진 과업이었다.
노벨재단 산하 노벨미디어가 한림원에 제안한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Nobel Prize Dialogue)'를 직접 보는 것도 필요했다.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는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 석학들이 사회 이슈를 주제로 대중 강연과 토론을 하는 행사다. 노벨 주간 핵심 프로그램인 '노벨 위크 다이얼로그(Nobel Week Dialogue)'의 해외 특별 행사다. 동일한 형식이기 때문에 개최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실제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스톡홀름에서 목격한 것은 일반 과학 대중 강연이 아니라 과학을 매개로 과학자와 일반인이 소통하는 마당이었다. 30여명의 연사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토론하는 행사장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부터 양복 차림의 지긋한 노인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 온종일 자리를 지키며 흥미롭게 경청했다.
그곳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은 교과서 속의 어려운 학문이 아니었다. 왜 과학이 인류 복지에 중요한 요소인지를 자연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한림원장으로서 우리나라가 과학 분야 노벨상을 조기에 수상할 수 있도록 일조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행사를 보고 나서 달라졌다. 우리 사회에 과학기술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국민들과 이야기하는 것 역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귀국 후 곧바로 개최 준비에 들어간 결과물이 바로 지난주 열린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이다. 행사 주제는 최근 한국의 중요한 사회 문제이자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고령사회'였다. 개막식을 전후로 점점 사람이 몰려와 1100여명을 수용하는 행사장이 가득 찼다. 끝나는 시간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이 드물었다.
오후에 진행된 병행 세션에서 노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룬 사회 분야는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듣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학생들은 행사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행사 후에는 다시 보기를 문의하는 연락도 빗발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몇년 동안 우리나라는 노벨상, 특히 노벨과학상을 하나의 목표처럼 여겼다.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기술 민간 외교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한림원 수장으로서 나에게도 노벨상은 큰 숙제다.
그동안 과학계는 국민들의 지원 아래 많은 투자를 받았다. 권위 있는 상을 받음으로써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 성원에 보답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 역시 연구의 즐거움과 인류를 위한 과학의 가치를 잃고 성과를 내는데만 급급했다.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가 과학자나 국민에게 과학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길 바란다. 한림원은 앞으로도 과학기술과 국민 사이에서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다.
과학은 우리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 과학 원리나 연구 성과에 대한 지식 전달 없이도 대중에게 과학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한림원은 앞으로도 '과학과의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mc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