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력 케이블이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에 강한 난연성과 내연성 기준이 다른 나라보다 턱없이 낮다. 이 때문에 불이 나면 전력 케이블이 망가져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가 먹통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대구 서문시장 화재와 올해 초 여수 수산시장 화재도 노후 전선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국내 전력 케이블 난연성은 C등급이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 제정된 전기설비 기술기준령 내 전기설비기술기준 판단 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 해외 신축 건물에 A등급 케이블이 적용되는 것과 비교된다. 내연성에서도 외국보다 기준이 낮다. 다른 국가가 섭씨 950도급(3시간)이나 1050도급(2시간)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은 반면에 우리나라는 750도급(1시간 30분)에 머물러 있다. 소방법에 명시된 기준이 이처럼 낮기 때문이다.
최근 신축되는 빌딩이나 아파트는 스프링클러, 유독가스 환기 장치와 같은 화재 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의무로 구축해야 한다. 화재가 나더라도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화재 조기 진압이나 인명 구조가 용이하다. 그러나 이런 첨단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하고도 정작 과거 방식의 전력 케이블 안정성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난센스에 가깝다. 아무리 좋은 화재 진화 시스템을 갖춰도 전력 공급이 안 되면 무용지물이다.
건설업계는 기준만 충족시킨다면 건축비용을 아끼는 방안을 찾기 마련이다. 현행 관련법 기준이 낮은 상황에서 굳이 비싼 케이블을 구축할 리 만무하다. 이런 관행이 결국 대형 참사를 키워 왔다. 그동안 관계 당국이 겉으로 드러나는 첨단 화재 예방 시스템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닌지 따져 봐야 한다. 전력 케이블의 안정성 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안정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준을 상향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세워진 스마트 빌딩이 불만 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