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21개국 정상이 치열한 논쟁 끝에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하는 '다낭선언문'을 채택했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참석하면서 일본, 중국 등과 설전을 벌였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미국의 반대에도 다자무역체제 지지를 명시, 지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선언문에 비해 진일보한 성과를 거뒀다.
다만 미국의 주장에 따라 '상호 이익이 되는 무역의 중요성'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완전한 이행 약속' 등을 반영했다. APEC 장기 비전인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를 놓고는 미국과 중국 간 입장 차로 구체적 행동계획을 합의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APEC의 역내 경제통합 주도적 의지를 흔들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베트남 다낭 인터콘티넨털 리조트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은 '새로운 역동성 창조·함께하는 미래 만들기'라는 주제 아래 지속가능하고 포용적 성장 증진, 지역경제 통합 심화, 디지털시대 질적 인적자원 개발 등 39개항을 담은 다낭 선언문을 채택했다. 아태지역 내 경제·금융·사회 포용성 증진을 위한 행동의제, 디지털 시대 인적자원 개발 프레임워크 등 2개 부속서도 마련했다. 인적자원 개발 프레임워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각 회원국이 처한 도전과제를 인정, 양질의 직업 훈련 교육과 사회적 보호 장치 강화 등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을 담았다.
다낭선언문은 “보호무역 조치 동결을 2020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한 약속을 상기한다”면서 “정당한 무역구제 조치 역할을 인식하며 모든 불공정 무역관행을 포함한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기로 다시 약속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 “연내 경제통합 의제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포괄적이고 체계적 방식으로 FTAAP의 궁극적 실현을 위한 절차를 진전시킨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덧붙였다.
각국 정상은 합의에 이르기까지 설전을 벌였다. APEC 정상회의 데뷔전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대로 보호무역주의와 양자 무역 우선 정책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선언문 채택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다른 참가국 사이 대립구도가 펼쳐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공정한 무역과 지적 재산권 도둑질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했다.
결국 선언문에는 '규범에 기반한, 자유롭고 개방된, 투명하고 포용적인 다자무역체제 지지에 관한 APEC의 역할 강조' '2020년까지 보호무역조치 현행동결 약속 상기' 등의 문구가 포함됐다. 미국 측은 '시장 왜곡적 보조금 폐지' 등 다자무역체제 보완을 위한 몇 가지 항목을 넣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일본은 중국 포위 전략으로 불리는 '인도-태평양 협력체'를 강조했다. 중국은 FTAAP 창설로 맞섰다. 이 같은 의견차로 APEC은 FTAAP 실현을 위한 포괄적 노력을 전개한다는 선언적 수준에서 문안을 마무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태 자유무역지대 창설이 APEC 공동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협력체 참여엔 일단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세계화 및 자유무역주의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해야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보호무역주의와 반세계화 정서의 근본 원인은 다양한 사회계층에 무역의 혜택이 광범하게 배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무역자유화를 통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집단이 없도록 적극 지원해야 하며, 이를 위해 APEC 차원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다낭에서는 APEC 정상회담 계기 다양한 양자 회담이 개최됐다. 오전에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선 양국 정상이 “북한 수교국인 베트남의 외교 최우선 순위는 한국”이라며 안보리 대북 제재 이행을 약속했다. 두 나라가 합의한 '2020년까지 교역 1000억달러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도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번 주 하노이에 개소 예정인 '글로벌 기후변화 허브센터' 'IT지원센터'와 내년 초 착공 예정인 '한-베 과학기술연구원' 등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협력 지평을 넓히기로 했다.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만나 중-러 밀착 공조를 과시했다. 이들은 한반도 북핵 문제를 포함한 공동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은 양자 회담을 통해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가능한 조기에 개최하는 것에 의견을 함께 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이후 2년 간 열리지 않았다. 3국 정상회의 차기 의장국인 일본 정부는 연내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한중 정상회담에선 오는 12월에 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다낭(베트남)=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