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https://img.etnews.com/photonews/1711/1012325_20171112132500_245_0001.jpg)
앞으로 외교적 성과는 '가치있는 외교' 보다는 '가격을 매긴 외교'가 훨씬 강조되는 시대가 될 것 같다. 이는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중·일 아시아 3개국 순방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3개국 순방 결과를 요약해 보자. 우선 미일 협상에서는 최강의 대북압박에 공조하면서 무역 불공정 해소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대미 인프라 투자와 대규모 무기구입을 약속했다. 한미 협상에서는 대북압박과 대화 촉구를 같이 강조하면서 무역 불공정 해소에 노력하기로 했다. 한국은 대규모 미국산 무기 구입을 약속했다. 미중 협상에서는 대북 압박에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중국은 대규모 미국 상품 수입과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를 지렛대 삼아 경제실리를 챙기는 이른바 '외교의 시장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다니는 비즈니스 정상 외교 방식이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설명과 설득, 요청이 과거의 방식이었다면 이번 트럼프 순방에서 보여준 것은 대표적인 대미 무역흑자국인 3개국에 대한 '강권주의'의 발동이었다. 종전의 '무역 불균형'이란 말 대신에 '무역 불공정'이라는 보다 공격적인 단어를 택한 점도 주목된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성과는 미국 내에서 그의 불리한 정치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주요 미디어들과 마찰음은 나날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회와도 점점 껄끄러운 사이가 되고 있다.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8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6%에 불과했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 아시아 3대국에서 챙긴 경제적 실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뉴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트럼프 순방이 주는 시사점을 몇가지 꼽아보자. 우선 미국의 권위와 책임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가치 외교'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가격 외교'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외교도 시장에서 값이 매겨지는 월스트리트의 논리가 적용되는 셈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미국의 변화에 중국이 더 큰 행보로 맞서며 본격적인 G2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그 상징물은 무려 2535억달러(약 283조원)에 이르는 미국산 상품 수입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의 70%를 넘는 액수다. 중국은 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총 223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으로서는 한 해의 흑자분을 털어내는 셈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표준' 확산이다. 최근의 세계경제 기조는 약세에 놓여있다. 경제 서비스화가 진행되면서 생산성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AI(인공지능)와 로봇의 가속화는 제조업 같은 효율적인 부문의 생산성을 한층 올려주지만 일자리는 깎아먹고 있다. 반대로 개호(수발)와 간호, 외식과 같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부문에서는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고용이 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어느 나라가 일방적으로 경제실익을 챙기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무역 흑자국들은 흑자를 환류시키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순방 결과를 놓고 미국의 잃어버린 일자리를 탈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끝으로 시장의 글로벌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국제적 무역 룰이 점차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전 유럽부훙개발은행 총재)는 '2030년 미래 예측'에서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농업,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이노베이션을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 제시했다.
하이퍼-포퓰리즘, 월스트리트와 골드먼삭스의 경영 논리, 헤리티지재단을 필두로 한 정통 보수주의로 무장한 트럼프노믹스는 이제 외교도 수치로 증명하려는 '외교의 시장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에 대비하는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