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 지진이 발생한 것은 지난 15일 오후 2시 29분이었다. 우연히도 그 시각에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국민안전안심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국가 재난·재해를 민·관이 체계화·통합하고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설치됐다. 과학 대응과 인문사회학 대응을 통해 안심이 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국민안전안심위 출범과 함께 발생한 포항 지진은 강도와 규모에 비해 피해가 상당히 컸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연기될 정도였다. 지진이 이제 전 국민의 걱정거리가 된 것 같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 언론들은 “한국에서는 드문 대형 지진이 발생, 지진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의 동요가 컸다”고 보도했다. 거의 매일 어딘가에서 지진이 포착되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수년에 한 번 정도 체감 지진이 발생한다.
포항 지진을 보면서 1995년 1월 17일 일어난 일본 고베 지진이 생각났다. 고베 지진은 사망 6434명, 행방불명 3명, 부상 4만3792명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대지진이다. 이 고베 지진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지진이기 때문이다.
고베 대지진이 과연 '자연 재해'인가 '인재(人災)'인가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고베시 코앞에서 발생한 대규모 직하(直下) 지진이란 점에선 피할 수 없는 자연 재해였다. 그러나 지진 발생 20년 전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이 대규모 지진 가능성을 경고했다. 자위대도 지진 발생 수년 전에 지진 대비책을 고베시에 촉구했다. 이런 점에서 고베 지진이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인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고베는 중급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어 '고베는 지진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었다.
고베 지진 발생 직후 화재가 잇따라 발생했고, 압사자가 속출했다. 전체 사망자의 80%가 압사자였다. 태평양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급히 복구하면서 목조 건물을 밀집 형태로 지었기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
일본 정부의 발빠른 대처로 고베 지진 사흘 후 전기 시설은 복구됐다.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에 수도와 가스시설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인근 도시 오사카와 교통 및 물류 확보를 최우선시하면서 복구 작업을 했다. 편의점과 슈퍼들은 이재민에게 큰 도움이 됐다. 지진 발생 1년 뒤 이재민들은 모두 가설 주택에 입주했다.
일본 정부는 고베 재건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1998년에 '고베 의료산업도시 구상', 2001년에 국가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2002년에 지적클러스터 구축 사업을 각각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2003년 고베를 구조개혁특별구역인 '첨단의료산업특구'로 선정했다. 일본 정부의 노력과 2006년 고베공항 개항으로 고베는 일본 최대의 의료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하면서 첨단 의료기술의 국제 연구개발(R&D) 거점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고베 지진의 교훈을 되새기는 조치도 빼놓지 않았다. 2002년 4월 고베에 '방재 미래관', 2003년에 '인간 미래관'을 잇달아 개관했다. 현재 두 시설은 통합돼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동반한 도호쿠 대지진을 계기로 2013년 12월 국토강인화추진본부(본부장 총리)를 출범시켰다.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수많은 재해에 견딜 수 있는 강인한 국토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추진본부는 2014년 '국토 강인화 기본 계획'을 마련했다. 대규모 자연 재해에 대한 취약성 평가 지침과 결과도 발표했다. 2014년부터는 매년 국토 강인화 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21세기 스마트시티 계획'에서 국토 강인화(National Resilience)를 다양성, 네트워크와 함께 3대 키워드로 제시하고 이를 최우선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포항 지진을 계기로 고베 지진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면서 국토를 자연 재해로부터 지킬 수 있는 세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난 15일 출범한 국민안전안심위가 이러한 국토 강인화 계획의 청사진 마련을 주도하길 기대해 본다.
![[곽재원의 Now&Future]일본 고베지진이 한국에 주는 교훈](https://img.etnews.com/photonews/1711/1014651_20171117143354_118_0001.jpg)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