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4차 산업혁명·스타트업으로 '제2의 벤처붐' 조성

IMF 구제 금융으로 6.25전쟁 이후 최대 경제 위기를 겪은 한국은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국민들의 힘 결집과 함께 정보통신(IT) 산업 발전과 벤처붐으로 빠르게 기사회생했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외환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벤처 활성화 대책을 추진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은 벤처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혁신 조치로 인정받고 있다.

◇'압축 성장' 이룬 벤처 활성화 정책

김대중 정부의 벤처 정책은 당시 정보화와 기술혁명이라는 세계 조류에 힘입은 면도 컸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먼저 노동·자본집약 산업으로부터 기술 집약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삼보컴퓨터(1980), 메디슨(1980), 휴맥스(1989), 한글과컴퓨터(1990), 넥슨(1994) 등 첨단 산업 기반으로 창업이 이어졌다.

여기에 1995년 벤처기업협회가 설립되면서 벤처기업 정책 조성 등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미국 나스닥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신시장(이머징마켓)인 코스닥시장이 설립됐다. 코스닥시장 설립으로 투자 자금의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고, 스톡옵션 등을 통한 고급 인력을 흡수했다.

1995년 벤처기업협회 창립 총회 모습
1995년 벤처기업협회 창립 총회 모습

정부는 IMF 이후 신성장 동력으로서 벤처기업 육성에 나섰다. 1997년 5월에 제정된 벤처특별법은 벤처기업인증제도를 통해 중소기업 정책 자금, 기술 개발 정책 자금 등 벤처기업 성장을 위한 창업 자금 지원 체계가 마련됐다.

1999년을 기점으로 벤처기업 창업 열풍, 벤처투자조합 및 엔젤투자 확대, 대기업의 벤처 투자 등으로 벤처기업 생태계 활성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1995년에 500여개 수준이던 벤처기업은 매년 2000개씩 늘어났고, 2001년에는 1만개를 넘겼다.

2000년 기준 벤처기업 성장률은 대기업을 크게 앞질렀다. 경상이익률과 고용증가율도 각각 4.9%, 24.3%로 일반 기업의 성장 속도를 크게 웃돌았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1분기 4.2%에 이름으로써 경제 성장 견인차로서의 벤처기업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단기간에 이뤄진 벤처기업 육성 정책은 결국 나스닥 폭락과 함께 벤처기업 침체기를 낳았다. 2002년 벤처기업 건전화 방안이 발표됐고, 주식 옵션이나 엔젤투자 세제 지원도 대폭 축소됐다.

◇'위대한 실패' 이어지는 제2 벤처붐 조성해야

외환위기는 기존 경제 성장 공식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줬다. 이와 함께 벤처·스타트업 기업 육성은 경제 패러다임 변화 시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로 증명되고 있다.

미국 증시 시가 총액 상위 기업인 아마존(1994), 구글(1998), 넷플릭스(1997), 페이스북(2004)은 벤처버블 시기를 거쳐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다.

이른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불리는 중국 대표 기업들도 이 시기에 탄생됐다. 알리바바는 1999년에 전자상거래 붐과 함께 탄생했다. 텐센트(1998), 바이두(2000)도 인터넷 창업 열풍과 함께 탄생해 중국의 미래 경제 성장을 이끄는 기업군이 됐다.

문재인 정부도 이달 초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발표하며 제2의 벤처붐 조성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코스닥 시장 중심의 회수 시장 활성화 방안도 다음 달 공개할 예정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바일 혁명에 이어 인공지능(AI), 클라우드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 도전으로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 등 전통의 첨단 산업을 대체할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이미 각국 정부는 첨단 산업 기반의 창업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의 고용증가율은 대기업 대비 3배에 이른다. 또 최근 3년 동안 대기업 매출액 증가율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동안에도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 매출액 증가율(2016년)은 7.2%를 기록했다.

현재 외환위기 이후 중소·벤처기업의 성장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벤처 버블이 꺼진 뒤 실패 이후 재기가 어려운 경제 환경은 도전을 꺼리게 하는 사회 문화를 만들었다.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과 공저한 '축적의 시간'에서 창조 축적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버려야 한다”면서 “고부가 가치 경험 지식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나온다”고 당부했다.

김명희 경제금융증권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