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벤처인증제도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민간 벤처 투자가 활성화된 미국 실리콘밸리 등과 달리 창업투자회사 등 국내 벤처 투자 관련 저변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은 최근 꾸준한 증가 추세에도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벤처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3%에 불과하다. 혁신 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미국(0.33%), 중국(0.24%) 등의 절반 수준이다.
실제 실리콘밸리 생태계에서는 민간 벤처캐피털(VC)의 유망 기업 투자가 적극 이뤄지고 있다. 실제 암 조기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그레일(Grail)은 올해 상반기에 9억1400만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창업 1년 6개월 만에 약 1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조달한 셈이다.
이 밖에 알파벳 자회사 베릴리생명과학(Verily Science),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리프트(Lyft), 온라인 금융업체 소셜파이낸스(Social Finance) 등이 상반기에 5억달러가 넘는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중국에서도 올해 3분기에 자전거 공유 플랫폼 베이징바이크록테크놀로지에 7억달러에 이르는 투자가 이뤄졌다. 영국 음식배달 플랫폼 업체 루푸즈(RooFoods)와 독일 음악 유통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는 3분기에 각각 3억유로, 1억4300만유로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반면에 국내 VC의 창업 초기기업 투자 금액은 평균 12억7000만원에 불과하다. 후기기업 투자 규모도 평균 27억6000만원에 그쳐 정부가 목표로 삼는 실리콘밸리 투자 생태계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회수 시장에서는 차이가 더 크다. 올해 상반기 미국 VC 투자 기업의 전체 투자 회수 가운데 92.2%는 인수합병(M&A)를 통해 이뤄졌다. 총 348건의 회수 사례 가운데 321건이 M&A였다. 나머지 27건만이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 회수다.
국내 회수 시장은 대부분 IPO 또는 구주 매각 등 세컨더리 시장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이뤄진 벤처 회수 자금 5927억원 가운데 M&A를 통한 회수는 203억원에 불과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벤처확인 제도는 결국 민간 주도의 벤처 생태계 마련을 위한 초기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면서 “벤처기업 확인 제도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선배 기업과 VC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도를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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