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이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동시에 ‘인류의 미래’로 미리 달려가 본 소설 ‘오리진(Origin)’ 한국어판(전 2권. 문학수첩 간)이 나왔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최신 기술혁신 성과와 견고한 과학적 담론으로 엮여 있어 순전한 상상이라고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댄 브라운 소설이 으레 그렇듯 오리진도 어김없이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을 소환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랭던 교수는 제자였던 천재 컴퓨터 과학자 에드먼드 커시의 초청으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가게 된다. 그가 세상을 뒤흔들 놀라운 ‘인류의 비밀’에 대한 발견을 공개하는 깜짝쇼를 준비해 발표하는 곳이다. 커시는 행사 사흘 전 카탈루냐의 한 수도원에서 3명의 세계적 종교지도자에게 발표 내용을 미리 흘린 바 있다. “한달 후 발표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는 사흘 만에 마련한 깜짝 프레젠테이션 행사장에서 누군가의 총을 맞고 숨진다.
랭던은 커시의 컴퓨터 동영상 비밀파일을 열 암호 마흔일곱 글자를 찾아 그가 발견한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비밀을 발표하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그동안 보아왔던 대로 랭던과 미녀가 도주극 을 벌이면서도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 가담하게 된다. 시간은 하룻밤에 불과하다.
소설의 화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다. (폴 고갱의 대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저자는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 인류의 종교, 창조론, 진화론을 살펴본다. 이어 기존의 모든 과학적 성과를 동원해 이를 풀어간다.
인류의 기원(오리진)을 찾기 위해 40억년 전 원시 지구의 상황을 만들어 실험한 저 유명한 유리-밀러의 실험이 나오는가 하면, 우주는 에너지를 흩뿌리려 하고 있으며 생명은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제러미 잉글랜드 MIT교수의 최신 이론도 등장한다. 여기에 인공지능 ‘윈스턴’을 움직이는 강력한 양자 컴퓨터가 힘을 보탠다.
오리진은 이전 작품들보다 소설밖 현실 세계의 역동적 변화 모습이 잘 반영돼 있어 더 생생한 느낌을 준다. 킬러가 우버택시를 이용해 도주하고 다크웹 거래가 이뤄지는가 하면 음모론 사이트가 계속해서 뉴스를 쏟아내는 모습 등이 그렇다. 음성비서 역할은 물론 그림까지 그리는 소설속 인공지능도 현실의 반영이다.
주인공들이 고색창연한 역사속 미술품을 간직했던 미술관들을 줄곧 내달렸던 이전 작품에서와는 달리 대표적 현대미술관인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과 현대 미술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과 그의 집 카사밀라, 스페인 슈퍼컴퓨팅센터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독자들은 행간에서 인공지능의 밝은 면과 위협도 동시에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댄 브라운 저, 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각 권 372쪽·352쪽, 각 권 1만3000원.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