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관심밖 국회, '대기업 지정기준' 또 흔들어…공정위도 “혼란 우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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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재벌) 지정 기준을 변경한 지 1년 만에 지정 기준 재수정을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공정위 지정 기준이 58개 법령에 준용되고 있어 재변경 시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역시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한편으로는 30년 전에 만든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 수단이 여전히 동일 적용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공정위 소관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이원화 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체계를 다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자산 총액 규모에 따라 대기업집단(자산 총액 10조원 이상)과 준대기업집단(5조원 이상)으로 구분, 규제 적용이 복잡해졌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이원화해 규제를 복잡화하는 것보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대기업집단 규제를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국내총생산(GDP)과 연동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제안했다. 자산 총액이 직전 연도 GDP의 0.5% 이상일 때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도 참여했다.

업계는 1년 만에 지정 기준을 재변경하는 것은 기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공정거래법뿐만 아니라 이를 준용하는 다른 58개 법령(시행령·규칙·고시)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문턱'에 있는 기업은 지정 기준에 따라 각종 규제·지원 적용이 달라져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공정위가 지정 기준을 변경한 것도 2008년 이후 8년 만이었다.

공정위는 GDP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연동 타당성 연구 용역을 이달 마무리한다. 연구 용역 결과를 참고해서 공식 입장을 밝힐 방침이지만 지정 기준 변동이 기업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은 업계와 의견을 함께했다. GDP 등 특정 경제 지표와 지정 기준을 연동하면 다른 경제 여건(기업집단 자산 총액 변화, 상·하위 집단 간 자산 격차 등) 변화를 반영할 수 없어 문제라는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변경한 지 1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다시 바꾸면 기업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면서 “연구 용역 결과를 참조, 내부 검토를 거쳐 국회에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1980년대 규제를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 기업을 옭죄면 안 된다는 근본 문제 제기도 나온다. 정부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1987년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 규모를 근거로 30년 전의 '재벌'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서 규제하는 것은 '시대착오'란 주장이다.

공정거래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규제 효율·형평성에 많은 문제가 있다”면서 “국내 시장만 생각하던 30년 전과 달리 지금은 글로벌 경쟁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관련 규제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