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슈퍼호황'이라 불릴 정도였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20.6% 확대된 4086억9100만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4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전년 대비 20% 이상 규모가 커진 것도 2010년 이후 7년 만이다.
◇메모리 시장 고공비행
성장을 이끈 품목은 바로 메모리다. 작년 메모리 매출액은 전년보다 무려 60.1%나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우드 인프라 확충에 따라 서버쪽 메모리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공급이 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메모리 값이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공급 부족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메모리를 생산하는 업체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도시바로 압축됐다. 공급사가 줄면서 생산 확대 경쟁이 과거 대비 줄어들었다. 공정 미세화가 어려워진 점, 이에 따른 투자비 확대 추세도 물량 확대를 제한한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반도체 업계 지형도를 바꿨다. 메모리 전문 삼성전자가 프로세서 전문 인텔을 누르고 반도체 업계 매출액 1위로 뛰어올랐다. 인텔은 1993년 이후 줄곧 반도체 업계 매출액 1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24년 만에 삼성전자가 그 자리를 뺏어버렸다. SK하이닉스는 3위 자리에 올랐다.
칩 업체가 성장하고 투자를 늘리면서 후방 장비 산업계도 수혜를 받았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6.5% 증가한 559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다. IT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도에 기록한 447억달러를 웃돌았다. 소모성 반도체 재료 시장도 들썩였다. 대표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웨이퍼는 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연초 대비 거래 가격이 20% 이상 뛰어올랐다. 노광, 증착, 식각 등 주요 생산 공정에서 사용하는 전자재료와 가스 재료 수요도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반도체 산업에 속한 전 생태계가 호황을 누렸다.
◇새해도 성장 지속…성장폭은 둔화
산업계 관심은 새해도 반도체 시장이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계속 성장한다'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 의견이 갈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연말을 지나면서 성장이 계속된다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다만 성장 폭은 작년보다는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WSTS는 2018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4372억65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작년 대비 7% 확대된 수치다. 작년 성장률 20.6%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통상 높은 한 자릿수 성장만 이뤄도 성숙 단계 산업에서는 큰 성장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올해 메모리 시장은 9.3% 성장이 예상됐다. 높은 한 자릿수 성장이지만 지난해 60%가 넘는 매출 확대를 보인 점과 비교하면 둔화세가 뚜렷하다.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는 메모리 가격이 작년보다 안정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D램은 여전히 강세를 띨 것으로 보지만, 낸드플래시는 주요 업체가 3D 제품을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값이 다소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삼성전자가 평택 신공장 가동을 시작했고 증설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이천 M14 신공장 2층에서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매각 합의를 이룬 도시바 역시 3D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해 신공장에 투자를 하는 중이다.
수요 측면에선 PC 시장은 여전히 어렵고, 스마트폰 시장 성장은 둔화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확대에 따라 서버 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전히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 관련 반도체 칩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가 관심사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파운드리와 패키징 업계는 늘어난 채굴기 전용 주문형반도체(ASIC) 생산으로 공장을 풀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센서는 올해도 견조한 성장…장비 시장도 확대
CMOS이미지센서(CIS)와 각종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기반 모션 센서 시장은 사물인터넷(IoT) 바람을 타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적지 않은 성장을 이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WSTS는 새해 센서 반도체 시장 규모가 작년 대비 7.2%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포함한 광전자 부품도 8%의 성장세를 예측했다.
반도체 장비 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새해도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칩 시장과 마찬가지로 성장세는 둔화된다. SEMI는 새해 반도체 장비 시장이 작년보다 7.4% 증가한 60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증가폭 36.5%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