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과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정권을 초월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과학기술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 갈 자문위원을 한자리에서 뵙게돼서 마음이 든든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제외하면 문 대통령이 과기 행사에 참석, 회의를 주관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의 R&D 예산권 이관,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상 강화 등 주요 과제가 내년으로 미뤄진 상황이다. 다소 늦었지만 문 대통령이 이날 행사를 계기로 과기계에 힘을 실어 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과기자문회의는 국가 과기 분야의 중장기 정책 방향 설정과 주요 정책에 대한 대통령 자문을 수행하는 과기계 최고 기구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을 개정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와 과학기술전략회의를 폐지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기능을 통합·이관할 방침이다. 단순 자문기구에서 대통령 직속 최고 '플래닝타워'로 격상된다.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통합 자문회의로서 실질 역할 수행은 내년으로 미뤄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1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세계 수준의 물리학자인 염한웅 부의장을 비롯해 R&D, 벤처기업, 법률, 과학문화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분들로 특별히 모셨다”면서 “구성원이 젊어지고 분야도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남녀 비율도 반반을 이뤄서 아주 이상형으로 생각한다”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 동떨어진 과기는 발전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사회 경제 문제에 체감도 높은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진, 미세먼지, 주류독감 등 국민의 삶과 밀접한 문제뿐만 아니라 혁신 성장을 통한 경제 발전에서도 과기는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국민생활에 밀접한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위원회'를 별도로 운영한다.
염 부의장은 지난 18일 열린 제1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결과와 문재인 정부의 과기 자문 방향을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과기자문위원회의 3대 자문분야로 △'국민생활 분야'로써 연구개발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고 그 혜택을 국민과 나눌 수 있는 방법 △'혁신성장 분야'로써 정부연구개발 사업이 혁신성장의 핵심수단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방안, 또 정부 연구개발사업으로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성공 사례를 발굴 분석해 정책방향으로 자문하도록 할 것 △'기초기반 분야'로써 정부와 연구자가 원활히 소통하도록 역할하고 젊은 과학자 성장 지원에 필요한 제도 개선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자문위원들은 사람중심의 과학기술 투자방향 차원에서 인재육성, 기초연구 투자 관련된 토의를 가졌다.
박수경 위원(KAIST 교수)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창의적 과학기술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과제 수행의 수단으로써 학생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교육의 수단으로써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사람중심의 연구 환경과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교원 및 과기분야 공무원의 평가가 현재의 단기성과 중심의 지표에서 장기적이고 연속적인 관점에서 이뤄지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정단 위원(ETRI 연구위원)은 “출연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신진연구자가 할당된 연구를 수행하기에 앞서 기본 연구를 장기적으로 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장기적·도전적 연구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고, 출연연구소에서 실패한 연구도 대학, 기업 등에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위원(강원대 교수)는 “지진과 관련하여 언제, 어디서, 어떤 규모로 발생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연구결과”라며 “다만 현재수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활성단층 분포도 작성과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민에게 빨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10초 이내에 첫 번째 재난 경보를 울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과 과학기술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과학입국의 명제를 세워왔지만 투자대비 성과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라며 “R&D의 대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담당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어깨가 무겁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혁신의 과정 중에서 관료나 행정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연구자 중심의 현장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둬야 한다”며 “향후 과학기술자문회의는 R&D를 비롯한 연구자가 원하는 과학기술분야 과제를 어떻게 속도를 내고 해결하는지 매년 평가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