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장비, 더 오래 고쳐쓰고 더 넓게 나눠쓴다

정부가 국가 연구장비 정책 중심을 도입과 중복성 심사에서 '활용성 제고'로 전환한다. 연구과제 종료 후에도 연구장비 유지 보수비를 이월, 적립해 사용하도록 한 '연구장비비 풀링제'를 올해부터 도입한다. 유휴·노후 장비는 다른 기관이나 중소기업에 이전하도록 '처분권고제'를 시행한다. 장비 운영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제2차 국가연구시설장비 운영·활용 고도화계획안'을 발표했다. 2차 고도화계획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가 연구장비 정책의 뼈대다. 3대 전략 12개 추진 과제가 제시됐다.

2차 국가연구시설장비 운영활용 고도화계획 비전 및 추진체계도(자료 : 과기정통부)
2차 국가연구시설장비 운영활용 고도화계획 비전 및 추진체계도(자료 : 과기정통부)

전자신문 1월 5일자 20면 참조

과기정통부는 공청회에서 '연구장비비 풀링제' 도입 구상을 밝혔다. 연구기관은 연구과제를 수주하면서 장비를 도입한다. 과제비에 연구장비 도입, 유지 보수 비용이 포함된다. 과제가 끝난 후에는 유지 보수 비용을 쓸 수 없고 잔액을 반납해야 했다. 과제 종료 후 연구장비 관리에 구멍이 생긴다.

연구장비비 풀링제는 연구책임자, 연구기관 별로 남은 유지 보수비를 이월, 적립해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별도 계정을 개설해 과제 종료 후 남은 비용을 적립한다. 장비 사용 중 문제가 생기면 이를 이용해 수리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풀링제를 시범 도입한다. 선도기관을 지정해 내년까지 시행하고 2020년 전 기관으로 확대한다. 연구기관 단위로 장비 집적시설(Core-Facility)을 운영하도록 지원한다. 연구 그룹 별로 특성화된 장비를 한데 모으고,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시설이다. 집적시설 단위의 풀링제도 내년부터 시행한다.

유휴, 노후 등으로 사용되지 않는 장비는 정부가 처분을 권고한다. 연구기관은 불용 장비 보유율을 낮출 방안을 마련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경상경비 감액 등 제재를 받는다. 연구기관에 방치된 불용 장비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남는 장비를 연구개발(R&D) 활동을 수행하는 중소기업에 이전하도록 유도한다.

연구장비 운영 전담인력의 전문성 향상도 과제다. 연구장비는 고도화됐지만 지난해 관련 인력의 정규직 비율은 55.9%까지 줄었다. 앞으로 비정규직 고용 기간은 일괄 2년에서 사업 기간 내로 확대한다. '연구장비분석직' 같은 직무능력 표준을 신설하고, '연구장비 명장' 등 포상을 실시해 전문성을 우대한다.

국가 연구장비 투자가 정점에 이른 상황에서 '활용성 제고'로 정책 중심을 옮긴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국가 R&D 투자액은 매년 소폭이나마 증가했지만 시설·장비 구축액 비중은 5% 내외에서 정체했다. 필요한 장비를 도입하고 중복성을 심사하는 정책이 한계에 이르렀다.

정부는 2차 계획 기관 동안 연구장비 활용성을 극대화하고, 공동 활용 촉진을 위한 전주기 지원 체계를 마련한다는 목표다. 유류·저활용 장비 비율을 30% 낮춘다. 연구장비집적시설을 30개 구축한다. 연구장비 시장의 외산 쏠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최초·선도 장비를 개발하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패키지 국산화를 지원한다.

임대식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혁신 기술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융합·협업 기반의 공동 연구가 요구된다”면서 “국가 R&D 인프라인 연구장비 활용 환경이 개선되면 연구문화를 선진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