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창밖으로 태안 앞바다가 펼쳐졌다. 이렇게 낮게 날면서 바닷가 풍경을 감상하기는 처음이다. 괜스레 마음이 들떠진다.
비행기를 탄 곳은 충남 태안에 위치한 한서대 비행장. KAIST 인공위성연구소(소장 박성욱)가 차세대 소형 위성 2호용 'X대역 영상레이더(SAR)' 성능 시험을 위해 마련한 비행기다. 소형 전천후관측영상레이더(SAR) 장비를 싣고 지상을 관측하는 임무다. 국내에서 항공기 영상 레이더 탑재체를 시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SAR는 빛이나 구름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악천후나 야간 환경에서도 지상을 관측할 수 있는 영상 레이더입니다. 아직 100㎏급 소형 위성에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이번 시험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로 적용할 수 있는 길에 한발 다가서게 됩니다.”
연구 책임자 신구환 박사가 비행기에 오르면서 설명한 말이다. 이번 시험에서는 태안 화력발전소 인근 반경 7㎞를 촬영, 영상화한다. 신 박사를 비롯한 3명의 연구진이 동승했다.
이륙 후 약 10분이 지나자 조종을 맡은 박수복 한서대 교수가 입을 열었다. “비행 고도 1.5㎞, 시속 324㎞, 30초 후 알파원(시험 위치)에 돌입합니다.” 그러자 연구진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릎 위의 노트북 컴퓨터와 비행기에 실린 제어장치를 가동하는 손길이 바빠졌다. 노트북 화면에는 오르내리는 그래프 화면과 제어 프로그램 창이 어지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안테나를 통해 20마이크로초(㎲: 1㎲=100만분의 1초)당 1회 초음파 신호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물에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를 해독해서 영상화하게 됩니다.”
이정수 연구원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신호발생기에서 만들어진 주파수 신호를 안테나로 송수신하고, 다시 신호처리기로 영상화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처음 촬영한 영상이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어두운 가운데 작은 점 형태만 눈에 들어왔다. 형상이 기울어진 채 출력되는 '스퀸트 현상'도 지나치게 심했다. 이런 현상은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 연구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길도 빨라졌다. 이러다가 어렵게 준비한 시험 비행이 무위로 그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상황은 비행시간을 30여분 남겨 두고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김철기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박사과정이 “이륙하면서 안테나가 틀어진 것 아니냐”고 말하는 순간 노트북 화면에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이 떠올랐다. 스퀸트 현상은 있었지만 태안발전소 인근의 굴곡진 지형과 각종 철제 구조물의 형상이 또렷이 보였다.
그때서야 이정수 연구원이 긴장이 풀린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내뱉었다. “항공기의 비행 속도에 맞춰 송수신기의 지연 속도를 재조종한 것이 통했습니다. 장치에는 이상이 없고 변수 값 적용이 안 된 것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남은 시간 동안 총 20기가바이트(GB) 용량의 지상 관측 영상을 얻었다. 어렵게 거둔 시험 비행 성과였다. 연구진은 이를 기반으로 실제 인공위성에 탑재할 탑재체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신구환 박사는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SAR 탑재체가 우주에서 충분히 기능한다는 사실을 입증, 조만간 실제 소형 인공위성에 쓰일 SAR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