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에너지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다. 말은 무성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다. 1차에서 3차 산업혁명까지의 기술과 파급 효과는 명확했다. 말 그대로 혁신 기술에 의해 산업이 혁명과도 같이 일대 변혁되는 발전의 계기가 됐다.
에너지 산업에서도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필요성과 적용 방안, 이로 인한 결과를 놓고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너지 산업은 수십년 동안 안정된 구조를 유지했다. 특히 전력 산업은 석탄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가 생산, 한국전력공사가 유통 및 판매를 각각 담당하는 단순 명료한 구조를 형성하여 최고 수준의 전력 품질을 자랑한다. 전기료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는 등 소비자 부담을 낮췄다. 대국민 서비스에 일조하는 한편 수출 산업의 원가 경쟁력을 지탱하는 든든한 산업 지원군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가 대세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로 퍼지기 시작한 기후 변화 이슈와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 발생하면서 싸고 안전하다고 믿어 온 에너지 생각이 바뀌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세계 시장이 확대됐다. 지난해 9월 영국에서는 풍력발전의 차액지원제도 입찰가가 원자력 발전의 60% 수준에서 낙찰되기도 했다. 더 이상 비싼 에너지원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례다. 미래 에너지로 생각하던 재생에너지가 현실성 있는 기술 대안으로 떠올랐다.
몇 년 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공급 위주에서 수요 관리 위주로 전환했다. 대규모 발전 위주의 공급으로 에너지 문제를 접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에너지 수요 관리에 팔을 걷어붙이겠다는 의미다.
이런 정책은 분산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정보통신기술(ICT) 적용으로 수요 관리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선진국 사례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에너지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역전 현상이 확인되면서 수요 관리 중심 에너지 정책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에너지 효율 사용을 위한 수요 관리를 위해서는 전체 사용량뿐만 아니라 피크 전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전력 수요 데이터의 세분화가 필수다. 이런 방식으로 지역별, 업종별 에너지 수요 정보와 분산 전원 공급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에너지 효율 배분을 위한 정책 결정 및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지역별로 분산 자원 배치, 가격 차별화, 다양한 서비스가 출현해서 에너지 생태계가 활성화된다면 이를 통해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에너지 소비 정보 활용으로 원전 15기 용량에 해당하는 15GWh의 전기를 절약한 사례가 있다. 국내도 데이터를 활용한 에너지 감소율이 20%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개인 정보 보호 차원을 넘어 활용과 이를 통한 소비자 권익 확대라는 관점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에너지 데이터 공개 및 공유다. 에너지 데이터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모든 주체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의 비전을 공감하고, 그 비전에 맞는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에너지 데이터를 통해 에너지 공급과 소비의 효율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우리가 목적한 바를 이루는데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적용됐음을 실감할 것이다.
정택중 에너지융합협회장 tomas@koe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