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임종기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행위가 합법화된다. 막연하게 금기시되던 '죽음의 선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함은 물론 의료 집착적 행위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선택 가능한 죽음에 대한 기준, 합의 등 인식·제도적 개선 필요성도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합법화'
연명의료결정제도는 말기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적극적 치료에도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스스로 혹은 가족 전원 동의 후 의사 2인 확인을 거쳐 연명치료를 유보·중단하는 제도다. 3개월간 시범사업을 거쳐 내달 4일 본격 시행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보장과 의료 집착적 행위를 줄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자는 취지다. 의료계 혼란을 막는데도 목적이 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2008년 김 할머니 사례에서 보듯 죽음의 선택을 놓고 법원 판결이 엇갈리면서 의료계 혼란이 가중됐다. 두 사례 모두 환자 가족 요청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보라매병원 의료진은 살인 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김 할머니 사례는 대법원까지 간 끝에 연명치료 중지를 승인 받았다.
제도가 시행되면 두 가지 서류를 통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 의사를 남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미래에 임종기에 접어들거나 말기 암 등 죽음 문턱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문서다. 19세 이상 성인은 등록기관을 찾아 상담 후 작성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 전문의 1인에 의해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될 경우 담당의사가 작성하는 서식이다. 내달 4일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www.lst.go.kr)에서 본인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조회할 수 있다. 이미 신청한 서식이라도 언제든지 수정, 철회 가능하다.
◇서식 작성 후 절차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로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실제 연명치료를 받지 않으려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선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에 의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임을 판단 받아야 한다. 대표 질환이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다. 다음으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환자가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두 문서 모두 없고, 환자 의사표현이 불가능할 경우 평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 의향을 환자가족 2인 이상 동일하게 진술해야 한다. 가족은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다. 모두 없을 경우 형제자매도 가능하다. 환자 의사능력이 없고 평소 의사도 확인 못할 때는 환자가족 전원 합의와 의사 2인 확인을 거쳐야 한다. 미성년자는 친권자인 법정대리인 결정과 의사 2인 확인이 필요하다.
◇석 달간 47명 죽음의 길로…사전의향서 작성도 증가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에 앞서 작년 10월 16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시범사업을 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 선정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을 중심으로 13개 기관이 참여했다. 석 달간 진행된 시범사업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9336건, 연명의료계획서 107건이 접수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자는 여성 6333건(68%), 남성 3003건(32%)으로 여성 비율이 높았다. 연령별로는 70대가 3287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60대 2007건, 80대 1931건을 기록했다. 젊은 층인 20대와 30대는 각각 157건, 109건이 접수됐다. 지역별로는 서울(2769건), 경기(2519건), 충청(1692건), 전라(634건), 대전(498건) 등 순으로 나타났다.
작년 10월 4주차 203건으로 시작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접수는 한 달 만에 500건을 돌파했다. 12월 첫째 주까지 2950건을 기록했는데, 한 달 만에 6000건 넘게 접수되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총 107건의 연명의료계획서는 남성(60건)이 여성(47건)보다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31건으로 가장 많았고 50대(29건), 70대(26건), 80대(12건) 순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이행은 총 54건이 이뤄졌다.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한 이행은 27건, 환자가족 2인 이상 진술은 23건을 기록했다. 환자가족 전원 합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도 4건이다.
이행 환자 54명 중 47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연명의료계획서로 환자 의사를 확인한 경우가 전체 46%인 22명이다. 환자가족 2인 이상 진술로 이행·사망한 환자는 20명(42%), 환자가족 전원합의에 의한 환자는 5명(12%)이다.
◇죽음에 가치를 더하다…의료 효율성 증대도 기대
우리나라 국민 약 70%가 병원에서 사망한다. 사망 1년 전에 들어가는 의료비가 개인 평생 의료비 약 25%를 차지한다. 익숙하지 못한 곳에서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며 죽음을 맞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의견이 분분하다.
죽음을 막기 위해 환자 가족과 의료진이 쏟아 붓는 노력이 '의료 집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치료 가능성이 희박하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는 환자를 약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집착에 가깝다는 말이다. 의료 집착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복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환자 가족에는 경제적 타격을 입힌다. 연명치료를 지속하면서 정작 치료가 시급한 환자를 위한 공간과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장기간 지속될 경우 국가 의료비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사업추진부장은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편안하고 개인 가치가 반영된 죽음을 택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막연하게 금기시되는 죽음, 임종 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게 이 법의 긍정적 요소”라고 말했다.
◇개선점 보완 숙제…법 개정 화두
복지부는 시범사업 기간 법·제도 보완점 발굴에 집중했다. 환자, 의료계 등 다양한 곳에서 제도 보완 요구가 컸다.
개선이 가능한 사항은 제도 시행에 맞춰 반영한다. 수가 마련이 대표적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의료인이 신청자, 환자와 충분한 상담을 진행하도록 시범 수가를 신설한다. 구체적 수가 규모 등은 이달 31일 건강보험정책심사위원회를 거쳐 발표한다.
시행에 따른 환자, 의료계 혼란과 잘못된 인식을 막기 위해 교육도 강화한다. 복지부는 작년 12월 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전국 단위 교육도 실시해 총 965개 기관 2395명이 이수했다. 저변 확대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 신청을 받는다.
과제는 법 개정이다. 현행 연명의료 대상이 되는 의학적 기술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로 네 가지 밖에 없다. 의학적 시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승압제, 체외막산소공급(ECMO) 등 현재 활용되는 연명의료 기술 확대가 필요하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대상자 확대도 요구된다. 현행 대상자는 말기환자나 임종과정 환자다.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는 기존 대상자를 포함, 수개월 이내에 임종이 예측되는 환자도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이 밖에 호스피스전문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제공 받는 말기 환자는 담당의사 1인에 의한 임종 과장 판단을 적용하고, 대상자가 아닌 사람에게 연명의료중단 등을 한 자에 대한 처벌도 1년 간 유예하는 것을 권고했다. 현재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 권고에 따라 구회에 개정안이 발의됐다.
윤동욱 법무사무소 서희 대표변호사는 “법이 제시한 임종 과정 환자, 말기 환자는 의료 현장에서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면서 “법 시행을 앞두고 신속한 수가 마련 등 제도적 보완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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