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무제한 충전카드'가 시장 생태계를 파괴할 블랙홀로 번질 수 있다는 업계 우려가 제기됐다. 이 충전카드 하나면 국가 전역에 깔린 95% 이상의 충전기 전부를 무료로 쓸 수 있어 시장질서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쟁 충전사업자나 전기차 제작사는 물론, 전기차 이용자까지 사용범위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29일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신형 전기차 '코나EV'와 '아이오닉 일렉트릭'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무제한 충전카드'를 지급한다. 현대차는 최근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를 공용 충전서비스 사업자로 선정하고, 올해 최대 1만2000대의 코나EV와 3000대의 아이오닉 일렉트릭 고객에게 무제한 충전카드를 제공할 방침이다.
이 카드는 발급 후 2년 간 전국에 깔린 공용 급속충전기를 충전량과 상관없이 무료로 쓸 수 있다. 또 국내 95% 이상의 인프라를 구축한 환경부(환경공단)와 한국전력의 약 3000기 급속충전기와도 로밍(사용자호환·과금)되기 때문에 이 역시 무제한 사용이 가능하다.
결국 이 카드 하나만 있으면 20여기의 한충전 충전인프라를 포함해 우리나라 전역에 깔린 급속충전기 95% 이상을 쓸 수 있다.
이에 전국 약 3000개 충전기를 1만대가 넘는 현대차 고객이 점유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국가가 무상으로 구축해 유료로 사용하는 가정용 충전기가 오남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 무제한 카드 발표 직후 각종 SNS에는 '동네 급속충전시설에 무제한 카드를 걸어놓고 아무나 쓰게 하겠다', '정부가 설치해 준 아파트 주차장 충전기는 앞으로 쓰지 않겠다' 등의 글이 넘쳐나는 실정이다.
반대로 같은 국가 공용 충전기를 쓰고도 충전량 1㎾h 당 100원에서 최대 313원의 사용료를 내야하는 경쟁 충전서비스 사업자와 타 전기차 제작사, 그리고 이들 고객 불만이 속출한다.
충전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현대차가 무제한 요금제를 하려면 자체 투자한 충전 인프라나 파트너사 인프라를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다”면서 “무제한카드는 공짜심리에 기반한 공용충전 오남용을 불러일으켜 시장이나 산업적 역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공격적인 마케팅이 오히려 출혈 경쟁으로 번지고, 물량을 앞세운 대기업 횡포로 비춰질 수 있다”면서 “자기집 충전기 놔두고 환경부 급속충전기에 줄서서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측은 오남용을 막기 위한 자체 기준을 마련해 시장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무제한 카드 론칭을 앞두고 이미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점을 고려해 사용횟수나 시간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고객 편리 이외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