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대로 민간 유전체 분석 허용 항목 논의가 제자리걸음이다. 산업계는 위해성이 적은 웰니스(건강관리) 영역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주장하지만, 의료계는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운영한 개인유전체분석(DTC)전문가협의체가 내달 활동을 종료한다. 산업계는 웰니스 영역에 한정해 민간 유전체분석을 허용해 달라고 최종 제안할 예정이다.
DTC는 기존 의료기관 의뢰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개인 유전자 분석을 민간 기업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16년 6월 30일부터 혈당, 혈압, 피부노화, 체질량지수 등 12개 검사항목, 46개 유전자 검사를 민간 기업이 직접 검사하도록 했다.
DTC 시행 1년 반이 지났지만 관련 기업 평균 매출은 1억원이 채 안 된다. 검사 허용 항목이 피부·미용 등에 국한해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 전부터 질병과 연관성이 낮아 관련 시장 확산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
작년 11월 의료, 산업, 법조계 등이 참여하는 DTC 협의체를 구성, 허용 항목 논의를 시작했다. 질병예측·예방 영역 확대를 원하는 산업계와 이를 반대하는 의료계가 맞서는 상황이다.
내달 활동 종료를 앞두고 산업계는 질병 영역을 포기하고, 웰니스 영역만이라도 허용해 달라고 최종 제안할 예정이다. 운동, 흡연, 음주, 다이어트 등 질병 연관성, 위해도가 낮은 영역에 한정했다. 한국바이오협회에서 관련 항목 200개를 사전에 도출, 내달 6일 열리는 회의에 제안한다.
의료계 수용 여부는 불투명하다. 산업계는 웰니스 영역마저도 수용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회의에서 제안했지만, 번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질병진단·예측 영역을 포기하고, 웰니스 영역만이라도 민간기업 참여를 허용해 달라고 주장했지만 의료계는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계가 바라보는 웰니스 시장은 건강관리 영역이다. 음주, 수면, 스트레스, 탈모, 운동, 흡연 등 건강과 관련된 요소별 유전요인을 분석해 체계적 관리를 돕는다. 니코틴 의존성 유전자, 지방 분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계는 유전체 분석도 넓은 의미에서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병원 교수는 “포괄적으로 보면 DTC도 의료행위로 볼 수 있는데, 생명윤리법 개정으로 특정 부분만 의료 영역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웰니스라는 개념도 모호한데다 질병과 접점이 생기기 마련인데, 모두 허용해 달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 국민 건강과 의료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질병치료보다 예측·예방이 중요하다. 유전체 분석 서비스 확대 필요성도 강조된다. 실제 미국, 유럽, 일본 등도 건강관리 영역에 유전자 검사 허용 항목과 대상 유전자를 명시하지 않는다.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부가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소극적 중재로 합의점 도출에 제 역할을 못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협의체 회의는 산업계가 제안하고, 의료계가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서 “사실상 의료계가 주도권을 쥐고 회의가 진행되는데, 정부는 관망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 산업계 모두 이득이 되는 실효성 있는 규제개선을 논의 중”이라며 “이르면 2월 중 합의점을 도출해 3월쯤 공청회로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