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어음제도 단계적 폐지, 대안은?...2차, 3차 협력사 보호해야

[이슈분석]어음제도 단계적 폐지, 대안은?...2차, 3차 협력사 보호해야

어음제도가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오랜 세월 기업 간 대표 결제수단이 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초 중소·벤처기업인과 소상공인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중소기업의 자금 유동성을 나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던 약속어음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문 대통령 발언으로 약속어음 폐지가 기정사실이 됐다. 정부에서는 현금지급 관행을 정착시킬 계획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약속어음 단계적 폐지는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사안”이라면서 “상생결제 시스템이 전파되도록 노력하면서 약속어음을 대체할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금결제의 민낯

약속어음 폐지 이유는 상생이다. 구매기업이나 원청업체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핵심은 결제다. 돈을 제 때 주고받는 게 곧 상생이다.

대금지급 방식은 크게 현금과 어음,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로 나뉜다.

납품업체 대부분은 현금을 선호한다. 유동성과 안전성 때문이다. 현금 보유량이 많으면 기업 경영상태를 건전하다고 본다. 부도 위험도 줄어든다. 결국 외담대나 어음 모두 현금을 받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사실 현금결제는 구매 기업이나 원청 업체에 유리하다.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에 따르면 현금결제 지급기한은 60일 이내다. 60일 내에 대금을 지급하면 현금 결제로 본다. 두 달짜리 외상이나 마찬가지다. 구매기업은 현금결제라는 이유로 대금 지급을 미룰 수 있는 셈이다.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에는 부담이다. 경영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급 기한이 도래해도 안심하기 이르다. 구매기업 유동성이 악화되면 어음이나 채권부터 막기 때문이다. 현금 결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외담대는 어음 단점을 보완했다. 외담대는 결제일 이전에 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해주는 방식이다. 중소업체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구매기업 금리를 적용받는다. 수수료 부담이 줄어든다. 신용등급이 낮아도 대기업 수준 저금리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환청구권이 부담이다. 상환청구권은 구매기업이 외담대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은행이 중소업체에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는 제도다. 외담대를 이용한 중소업체가 연대보증을 서는 격이다. 어음처럼 연쇄부도 우려가 존재한다.

◇상생결제가 해법

정부가 약속어음 제도를 폐지하는 이유는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거래 관계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관계자는 “현금결제가 무조건 중소기업에 이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상생결제 시스템을 이용해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생결제는 구매기업이 채권을 발행하고 실제 대금 지급은 은행을 통해 이뤄진다.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업체는 물론 2차·3차로 이어지는 후순위 협력업체까지 보호한다.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제도인 셈이다.

상생결제는 일단 부도 위험이 적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한 외상매출채권 대금지급을 은행이 보증한다. 은행이 구매기업에서 받은 대금을 정해진 날짜에 거래기업에 지급한다. 구매기업이 지급한 대금은 결제대금 예치계좌에 넣어둔다. 구매기업 부도에 따른 압류·가압류도 건드릴 수 없다. 계좌 운영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맡는다. 상환청구권이 없다는 점에서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보다 안전하다.

상생결제를 이용하면 금융비용도 아낄 수 있다. 상생결제를 도입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금리가 거래에 관련된 모든 협력업체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1차 협력업체가 받은 채권 일부를 2, 3차로 내려 보내기만 하면 된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2차 거래기업은 금융비용을 14%에서 최대 43%까지 절감하고 세제 혜택도 누린다. 3차 기업은 금융비용을 최대 73%까지 아낄 수 있다.

1차 협력업체 혜택도 적지 않다. 1차 기업은 세제혜택은 물론이고 환출이자와 장려금까지 받는다.

환출이자는 2차 협력업체가 1차 협력업체로부터 넘겨받은 채권을 할인할 때 발생한다. 구매기업이 채권 만기일에 대금을 예치계좌에 입금하면 해당 할인액을 조기 상환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장려금은 1차 협력업체가 할인하지 않고 만기일까지 예치계좌에 넣어두면 받을 수 있다.

◇상생결제, 의무화가 관건

상생결제 시스템은 중기부 산하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운영한다. 기존 결제수단을 보완하면서 2017년 기준 41개 공공기관을 포함해 총 357개 대기업이 사용 중이다. 연간 거래 규모만 93조6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상생결제가 1차 협력업체에만 머물러 후순위 업체는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1차 협력사 상생결제액은 92조5888억원인 데 반해 1차-2차는 9683억원에 불과했다. 총 거래액 중 1.05%만 후순위 업체로 이어졌다. 1차 협력업체 참여 저조로 기대했던 낙수효과가 2차 협력업체 아래로는 미치지 못했다. 의무 적용이 필요한 대목이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상생결제를 의무화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 개정안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 개정안을 지난해 대표 발의했다.

상생법 개정안에서는 사업을 위탁받고 납품대금을 상생결제 방식으로 지급받은 기업이 해당 사업 일부를 재위탁하는 경우 수탁기업에는 현금결제나 상생결제로 대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정부가 상생결제를 도입한 기업을 포상하고 세제를 지원하도록 관련 조항도 신설했다.

공운법 개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물품 제조, 공사, 용역 등 계약 대금을 현금결제나 상생결제를 통해서만 지급하도록 했다.

해당 법안은 이번 주 열리는 산업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첫 상정된다. 중기부에서도 우선 통과 법안으로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 측은 “상생 결제 법률 근거가 부족해 보급·확산이 더디고, 여전히 많은 수탁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2차 이하 협력사 경영 안정을 도모해 기업 간 격차 해소와 신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창선 성장기업부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