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국내 철수' 카드 버리지 않은 GM…“치밀한 계산 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 사업 철수와 유지 중 어떤 결정이 이득이 될지에 대한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정부 대형 투자와 인건비 삭감, 구조조정 등을 보장 받고, 차세대 모델을 국내 공장에 배정하는 안이 유력하다. 하지만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내 사업 철수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다.

오른쪽부터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오른쪽부터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GM인터내셔널 사장은 지난 20일 여·야당 국회의원들고 만나 “한국에 머물고 경영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 '최우선 선호사항'이지만, 상당한 대형 투자 및 구조조정 활동이 포함된 회생 계획이 필요하다”면서도 “계속 적자가 나면 회사를 끌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GM이 말하는 대형 투자는 한국지엠이 본사에 진 부채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를 출자전환하는 대신 한국 정부 금융 및 세금혜택 등이다. GM이 한국에 요청한 지원 금액 규모는 10억달러(약 1조원)에 달한다. 또 한국지엠 공장 일대를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7년간의 세제혜택 지원도 요구했다.

◇GM 선심 쓰듯 말하는 '신차 배정'…한국 철수 '가늠좌'

엥글 사장에 따르면 GM은 한국지엠이 연간 50만대 생산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차 배정을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차종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차세대 '소형 SUV(9BUX)'와 글로벌 아키텍처 '크로스오버차량(CUV)'을 부평공장, 창원공장에 각각 배정할 전망이다. 9BUX는 한국지엠이 2015년부터 개발을 총괄해 2020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차세대 CUV는 1단계 개발이 진행된 차량으로, 양산까지 48개월 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한국지엠 '더 뉴 트랙스 블레이드 에디션' (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 '더 뉴 트랙스 블레이드 에디션' (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은 두 차종을 배정받지 못할 경우 순차적으로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다. 창원공장은 현재 스파크, 다마스, 라보 등 경차만 생산하고 있다. 창원공장 생산량 95%를 차지하는 스파크는 2020년께 단종 예정이다. 다마스, 라보는 2019년 환경규제로 생산이 중단된다. 부평공장은 1공장에서 트랙스, 아베오, 2공장에서 말리부, 캡티바를 생산한다. 현재 연산 약 33만대로 가동률이 100%를 넘지만, 트랙스(27만여대)가 단종 되는 2020년께는 연산 5만~6만대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노조는 차세대 소형 SUV, CUV 외에도 한국지엠에서 개발을 총괄한 차세대 '경차(M2-2)'도 배정해 달라는 입장이다. 부평, 창원, 군산공장에 각각 배정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군산공장 폐쇄를 확정한 GM은 두 종 이상 배정할 계획이 없다. 그 마저도 정부 대형 투자와 노조 협조가 있어야만 진행할 방침이다.

◇쉐보레 철수 때 예견된 군산공장 폐쇄

한국지엠은 지난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가동률이 20%에 불과했던 공장은 이미 가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한국지엠은 5월까지 노동자 구조조정 절차를 마치고 완전 폐쇄한다. 엥글 사장은 군산공장 회생안에 대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공장은 폐쇄하는 GM 경영 원칙이 군산공장에도 적용된 것이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크루즈' 생산라인 모습 (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 군산공장 '크루즈' 생산라인 모습 (제공=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는 2013년 12월 쉐보레 유럽법인 단계적 철수가 시작되면서 예견된 일이다. 당시 한국지엠은 유럽시장에 연간 18만~20만대 가량 수출했다. 군산공장은 그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쉐보레 유럽 철수가 시작되면서 가동률이 60%까지 떨어졌다. 연간 생산량은 26만대에서 14만대 규모로 축소됐다. 수출 길이 막히면서 내수 전용 공장으로 전락한 군산공장은 지난해 생산물량이 3만3000대에 불과했다.

GM이 당초 군산공장을 신형 크루즈(프로젝트명 J400) 생산 공장에서 배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통해 신형 크루즈 생산이 배정됐지만, 2017년부터 생산이 가능했다. 그마저도 국내 판매가격이 경쟁모델보다 200만~400만원 가량 높게 책정돼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가동률은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재고 물량이 넘치면 일시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GM은 5월 군산공장 완전 폐쇄 후 인수의향자에게 적극 매각할 방침이다.

◇GM, 호주서도 정부 지원금 받고 '먹튀'

정부와 산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GM이 국내 사업을 철수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지엠 총 고용인원은 직접고용 1만6000명, 협력사 14만명 등 총 15만6000여명으로 추산된다. 경제적 영향은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정부는 한국지엠을 포기할 수 없다.

제너럴모터스(GM) 본사
제너럴모터스(GM) 본사

재계 및 산업계에서는 GM이 이런 상황을 악용해 투자만 받고 '먹튀'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다. 실제 호주에서는 2022년까지 생산 조건으로 공장가동과 신규투자에 10억 호주달러(약 8600여억원)를 투자하겠다며 호주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호주 정부는 인건비 보조금만 12년간 약 20억 호주달러(약 1조7000억원), R&D 보조금도 2억7500만 호주달러(약 2300여억원)를 지원했다. 하지만 GM은 2013년 4월 애들레이드 공장을 폐쇄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 2억6500만 호주달러(약 2250억원)와 임금삭감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GM은 2013년 12월 호주 정부에 추가 보조금 1억5000만 호주달러(약 1270억원)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당하면서 철수를 확정했다.

[이슈분석]'국내 철수' 카드 버리지 않은 GM…“치밀한 계산 中”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