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공동대표에서 물러났다. 낮은 지분율에도 한·일 롯데를 지배하는 '원 롯데' 구심점의 신 회장이지만 법정 구속에 이어 한·일 롯데 지배 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롯데 지배 구조에 파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21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정기이사회를 열고 신동빈 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과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하는 안건을 올렸다. 기업 총수의 '도덕성 해이'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일본 기업 문화 특성을 반영, 신 회장 사임을 승인했다. 한국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재판에 회부되더라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뒤 거취를 결정하지만 일본은 구속 수감 즉시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다.
이에 앞서 신 회장 역시 일본 롯데 경영진과 현지 투자자를 만나 재판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약 법정 구속되면 절차(대표이사직 사임)를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임은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 경영에도 상당한 파장을 예고한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를 매개로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의 지배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어 신 회장이 강조해 온 한·일 '원 롯데' 경영의 핵심 회사다.
신 회장 사임으로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 사이를 이어 주는 호텔롯데 상장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한·일 롯데 간 연결고리를 끊고 독립하는 방안을 세웠지만 롯데홀딩스(19.07%), 광윤사(5.45%), L투자회사(74.76%) 등 일본 롯데 지분이 99% 이상인 호텔롯데에 대한 신 회장 영향력이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 사임은 일본 경영진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한국 롯데에 대한 일본 롯데 경영 간섭이 불가피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당장 한국 롯데는 주요 경영 사항 등 의사 결정을 일본 경영진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동주 전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장악한 광윤사가 28.1%로 최대 주주로 되어 있어 경영권 분쟁 시작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1심 선고 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일본 광윤사 대표 자격으로 입장 자료를 통해 신 회장의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직 사임과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롯데홀딩스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등이 주요 주주다. 신 회장의 지분율은 1.4%에 불과하다.
그러나 쓰쿠다 사장과 고바야시 마사모토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이 신 회장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과 공동대표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부회장직은 유지한 것으로 보아 신 회장에 대한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신임은 여전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남은 재판에서 신 회장이 죄를 소명해 무죄를 선고받을 경우 곧장 공동대표직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롯데 관계자는 “'원 롯데'를 이끄는 수장의 역할을 해온 신 회장의 사임으로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해온 한일 양국 롯데의 협력관계는 불가피하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일본 롯데 경영진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