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무렵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은 기술과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등 전반에 걸쳐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기술 혁신을 산업 발전으로 연결시킨 영국은 지구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강대국으로 변모했다.
2차 산업혁명은 20세기를 전후해 영국 외에도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과 석유 발견, 철도 및 증기선을 활용한 대량 생산을 촉발시켰다. 2차 산업혁명에 이어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 국가로 군림하고 있다.
1·2차 산업혁명이 진행된 약 200년은 7000년 전 인류 역사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 이래 최대 격동기였다. 그동안 인류의 문명 수준과 사회·정치 근본 환경을 변화시킨 혁신 및 혁명의 시기였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산업혁명이 불붙고 있던 1776년 정조대왕은 탕평책, 초계문신제(抄啓文臣制) 등을 통해 계파와 신분을 초월해 젊고 유능한 인재를 골고루 등용했다. 그 결과 정약용, 박제가, 이덕무 등 실학자들을 배출하고 '실학 시대'를 열었다. 또 신해통공을 통해 금난전권을 전면 폐지해서 정경 유착을 끊고, 자유로운 상업과 공업을 통한 경제 발전을 유도했다.
실학자들의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념은 자생의 근대화를 위한 큰 물줄기였으며 조선판 산업혁명의 불씨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1800년 정조대왕 급서와 함께 조선의 마지막 혁신 체제는 막을 내렸다. 순조부터 시작된 세도정치 권력은 개혁 정책을 폐기하고,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백성들을 수탈했고, 서학을 철저히 배격했다.
대원군 집권까지 세도정치가 득세하던 60~70년 동안 우리는 격변하는 세상에 눈을 막고 귀를 닫은 채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통째로 날렸다.
그 폐해가 훗날 외세에 의한 강제 문호 개방과 36년 동안의 일제에 의한 주권 침탈, 동족상잔의 6·25 비극 등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점철하는 아픔을 초래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우리는 지난 60여년 동안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과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다. 정치 민주화도 진전시켰다.
이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산업혁명이 그러했듯 4차 산업혁명에서의 승자와 패자도 머지않아 명확히 드러나고, 승패의 순간은 과거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 것이다.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첨단 과학기술이나 산업 혁신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멀지 않아 없어질 직업을 목표로 12년 동안 모두 쏟아붓는 학교 교육 문제, 좌우 이념 논쟁에 막대한 사회 비용을 치르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과학기술과 산업 혁신만으로 4차 산업혁명 승자라 되리라는 희망은 차라리 망상에 가깝다.
세계 최초로 자동차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마차 산업의 기득권 세력에 편승한 '붉은 깃발 법'인 적기조례로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 옛 영국의 뼈아픈 정책 실패를 현재 우리가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때가 많다.
시대 혁신은 개방과 협력, 융합과 연결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진정으로 지향하고 체화하고 있는지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공무원이 혁신 주체가 못 되면 혁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단 공무원의 문제가 아니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의장은 “앞으로 10년은 지난 50년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 환경이 또다시 혁명기를 맞고 있는 지금 한낱 먼지에 불과할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혁신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는 되돌아봐야 한다. 조선을 붕괴시킨 것은 외세 무력이 아니라 스스로 정체된 채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우리 자신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jimmylee@kov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