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업계는 인력 블랙홀로 불렸다. FPCB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경기도 안산 지역 내 생산 인력을 대거 흡수했기 때문이다. 채용 규모가 상당해서 경쟁사도 아닌 다른 업종의 생산 인력까지 빨아들이는 사례도 생겼다. 그러나 불과 반 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갑작스런 수요 감소에 호황은커녕 이젠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내 FPCB 업계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아이폰X(텐) 효과로 쾌조의 실적을 기록한 지 1년도 안 돼 다시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아이폰X에 웃고
국내 FPCB 업계는 지난해 유례없는 기회를 잡았다. 공급 과잉으로 업계 전체가 구조 조정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애플이라는 대형 바이어가 나타났다.
애플이 신작 아이폰X에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적용하기로 결정하면서 FPCB 수요가 급증했다. 애플이 필요한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한국 기업밖에 없어 그야말로 호재를 맞았다.
애플은 RFPCB 1억개를 요구했을 정도로 주문량이 많았다. 또 단가가 높은 RFPCB를 요구, 애플 납품은 곧 실적 상승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2017년 1, 2분기에 적자를 기록한 인터플렉스는 3분기에 625억원이라는 영업이익 기록을 썼다. 비에이치 역시 3분기 영업이익이 232억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흑자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적자를 면치 못하던 삼성전기 PCB 사업부도 애플 효과로 지난해 4분기에 흑자를 달성하면서 상승 분위기를 이어 갔다.
◇아이폰X에 울고
그런데 연초 들어와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애플이 2018년 들어서면서 아이폰X 감산을 결정한 것이다. 아이폰X 판매 부진에 발주를 대폭 삭감했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당초 계획보다 50% 이상 주문을 줄였다. 또 모델 교체를 위해 상반기까지만 부품을 구매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주문 감소에 부품 공급사들은 충격에 빠졌다. 애플 아이폰X 효과를 톡톡히 본 FPCB 업체에 강타한 충격파가 크다.
IBK투자증권은 인터플렉스에 대해 “2018년 상반기 실적은 지난해 하반기 대비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면서 “아이폰X 물량 급감으로 상반기 매출은 2017년 상반기 수준을 하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에이치 역시 실적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KTB투자증권은 비에이치에 대해 “아이폰X 감산에 따른 실적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전기 FPCB 사업 또한 냉랭한 시장 상황에 분위기가 침체되고 있다.
◇하반기는 다시 뜰까
관심은 반등 여부다. 애플은 올 가을 OLED를 적용한 아이폰 2종을 새로 출시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하반기부터 FPCB 주문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인터플렉스, 비에이치, 삼성전기 등에 다시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그러나 고가 아이폰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이 확인됐다. 애플이 OLED 아이폰을 2종으로 늘려도 판매 한계로 실제 부품 주문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당초 부품업계는 올해 OLED 아이폰이 두 개로 늘어나 부품 수요도 전보다 두 배 늘어난 연간 2억개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이폰X 판매 저조로 올해 물량에 대한 기대치가 1억대 수준으로 낮아졌다.
한 FPCB 업체 관계자는 “5월부터 신규 모델 생산이 시작돼 반등이 예상된다”면서 “발주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