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돼 '다보스포럼'이라고도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얼마 전 막을 내렸다. WEF는 전 세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영리 단체다. 세계 석학과 리더의 담론을 모은다. 최근 몇 년 동안 4차 산업혁명을 중점 의제로 기술혁명이 가져올 영향을 다각도로 고민했다.
올해 WEF는 '분절된 세계에서 공유 미래 창조'를 주제로 분절된 세계를 이어 주는 구조를 제안했다. 분절된 세계는 어떻게 이을 수 있을까.
우선 지리상의 거리를 이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자율주행차가 연상된다. 정보를 주고받는 센서, 이를 이어 주는 통신 네트워크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많은 정보를 분류하고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 활용과 인공지능(AI)까지도 생각을 확대하게 된다. 이렇게 이어진 세계를 통해 건강하고 장수하는 삶을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흐름 속에 분절된 세계를 잇기 위한 '전기화학'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필자를 포함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학자와 연구자들이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전기화학의 효시는 '개구리 뒷다리 실험'으로 알려진 19세기 이탈리아 학자 루이지 갈바니의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 응용은 200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라크 수도 인근에서 발굴된 '바그다드 배터리'가 있다. 초기 형태 전지로 추정된다.
전기화학은 배터리, 연료전지, 태양전지, 커패시터, 센서, 전착에 이르는 많은 분야로 확대·발전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 시절에 출범한 한국전기화학회에도 7개 전문 분과가 자리를 잡았다. 오는 21~22일에는 80여명의 핵심 연구자들이 '전기화학-새로운 20년'을 주제로 머리를 맞댄다. 다보스포럼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진지하고 개방된 태도로 임한다. 쌓인 현안과 미래의 논의거리가 많다.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 마음에 긴장을 더해 본다. 전기로 가는 자율주행차, 하늘을 나는 드론, 몸에 부착된 생전기 화학센서 등 전기화학 현상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장치가 우리 주위를 장식할 때를 그려 본다. 개구리 뒷다리의 작은 움직임은 거대한 전기화학의 물결을 가져왔다. 액세서리 도금에서 전기자동차 주행, 신재생 발전 및 저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 신경 전달 해석, 신체 상태 진단 해석 분야 등으로 또 다른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전기화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대학의 교육 과정이 현재 마련돼 있지 않다. 그나마 '전기화학' 과목을 개설한 학교의 강좌마저 제대로 이어지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접할 때 우리의 조급증 DNA가 이제는 대학 교육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통감한다. 세상의 빠른 변화에 필요한 융합과 창의 발상도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변화의 핵심 바탕에 자리하는 학문에 대한 중요성도 결코 소홀히 취급되면 안 될 일이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다가오는 시대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변화에 앞서 가져올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심은 언제나 학문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전기화학회의 창립 정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종 분야 간 협력과 상생의 길을 본받아야 한다. 고대 플라톤 철학에서 언급되는 이데아(본질)와 에이도스(형상)의 관계가 엄연히 유지하고 보완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전기화학의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시기, 연구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시 상기해야 할 때다.
조원일 KIST 책임연구원(한국전기화학회 11대 회장) wonic@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