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종로 음식점에 무슨 일이?…'배달난' 확산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샌드위치 판매점. 이곳에서 15년 넘게 장사했다는 가게 주인 A씨는 최근 배달 대행업체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열흘 후 배달을 중단하겠다는 통보였다. 수익 상당 부분이 배달에서 나오다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계약 종료일까지 반년 넘게 남아 이런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못했다”며 “전체 수익 20%를 배달로 버는데 이 돈을 고스란히 까먹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1년 전 배달 대행업체 존재를 처음 알았다. 요금이 저렴한 곳을 골라 계약을 맺었다. 돈벌이는 쏠쏠했지만 배달 지연과 같은 크고 작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지금의 대행업체로 갈아탔다. 대기업 투자도 받았고 광고도 많이 하는 회사여서 믿고 일을 맡겼다.

그러나 반년도 채 안 돼 계약 해지 통보라는 난감한 상황에 내몰렸다. 그는 “다른 업체를 구할 때까지 여유 시간도 제대로 안 준 채 이렇게 무책임하게 계약을 끊을 줄 몰랐다”며 “어렵게 모은 단골손님마저 잃을 처지”라고 날을 세웠다.

해당 업체는 최근 햄버거 전문 프랜차이즈의 배달 대행 사업을 따냈다. 이 프랜차이즈는 종로 지역에만 5개 업소를 두고 있다. 하루 400여건 넘게 배달 주문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더 한 명당 주문 50여건을 처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8명 상당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배달 업계 일각에서는 프랜차이즈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일반 가게 대상 사업에서 손 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샐러드 가게 주인 B씨는 집단 반발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만약 프랜차이즈 때문에 (기존 가맹점을) 내팽개친 것으로 확인되면 주변 점주와 연대해 강력히 항의할 방침”이라며 “계약 해지 사유와 절차상 정당성을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체 홈페이지와 같은 공식 채널이 아닌 전화로 종로 사업 철수 사실을 전해왔다”며 “업주들에게 공식 사과하는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배달 업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라이더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 물량이 쏟아지면서 일반 가게까지 챙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 이후 라이더 자체 고용 정책을 변경, 외부에 배달을 맡기고 있다. 이 물량을 따내기 위해 배달 대행업체들은 요금인하 경쟁까지 벌여가며 총력전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만 쫓는 대행업체 경제 논리에 밀려난 가게가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며 “라이더 인력난에 시달리는 시장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로뿐 아니라 서울·경기권 전체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는 배달 대행업체에 유리하게 작성된 계약서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 업체는 계약 해지 시 유예기간에 대한 규정을 계약서에 넣지 않는다. 추상적 사유로 계약을 끊을 수 있도록 했다. 배달 지연이나 사고가 터졌을 때 누가, 어떻게 책임질지도 모호하다.

안희철 법무법인 양재 변호사는 “한 개 계약서를 불특정 다수와의 거래 시 쓴다면 약관으로 볼 수 있다”며 “관련법에 따라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거나 사업자 책임을 부당하게 면제하는 조항은 무효”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달대행을 포함한 신사업을 국가가 좌지우지해선 안 되겠지만 표준 약관을 제시, 공정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해당 배달 대행업체 관계자는 “원활한 배달 수행을 위해 종로, 광화문, 을지로로 서비스 권역을 쪼개는 과정에서 일부 업주와 오해가 생긴 것”이라며 “프랜차이즈 계약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