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한 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4일 갑작스럽게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더 많은 노력”을 주문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추진에 대한 '선전 포고'다. 현대차그룹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지분율이 높지 않아 독자적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다른 외국계 투자자들이 동조할 경우 지배구조 개선의 첫걸음인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이 그룹 기대와 달리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4일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 보통주를 미화 10억 달러(1조500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의 출자구조 개편안은 고무적이나,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강조했다.
엘리엇은 스스로 현대차그룹 지분 총액이 1조원 정도라고 소개했지만, 사별 구체적 지분율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사의 시가총액(3일 종가 기준)은 현재 73조5000억원(현대차 34조8000억+기아차 13조2000억원+현대모비스 25조50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엘리엇이 1조원을 보유하고 있다면, 3사에 대한 지분율은 1.36%에 불과하다.
각 사에 대한 지분율도 당연히 5%를 넘지 않기 때문에 공시 대상이 아니고, 정확한 지분율은 예탁원에서나 파악 가능한 상태다.
지분율 자체는 높지 않지만, 현시점에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현대모비스에 대한 엘리엇의 적극 개입 가능성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오너 부자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4개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놨다.
이 지분 매입에 앞서 현대모비스가 모듈·AS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하고, 이를 현대글로비스가 합병하는 사업 구조 개편도 진행된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순자산 가치 기준에 따라 0.61대 1로 결정됐다. 비상장 상태인 현대모비스 분할사업 부문과 상장사인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은 전문 회계법인이 자본시장법에 준거, 각각 본질가치와 기준주가를 반영해 산정했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현대모비스 주주는 주식 1주당 현대글로비스 신주 0.61주를 배정받는다. 현대모비스 주식의 경우 분할 비율만큼 주식 숫자는 줄어들지만, 지분율 자체에는 변화가 없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오는 5월 29일 각각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번 분할·합병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등을 팔아 '지배회사'격인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기아차 등으로부터 사들일 계획이다.
결국 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이 모비스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의 시작이자 핵심인데, 엘리엇이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모비스 인적 분할 건이 주총에서 통과되려면, '의결권 있는 출석주주 3분의 2이상 동의와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참석, 동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모비스 지분 중 오너 측 우호지분은 개인 지분에 기아차(16.9%), 현대글로비스(0.7%), 현대제철(5.7%) 지분을 더해 약 30% 정도로 알려졌다.
외국인 지분율이 48%에 이르기 때문에 엘리엇이 '주주 가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분할에 반대하고 외국인투자자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소액주주 이에 동조하면 분할이 무산될 수도 있다.
국내 증권업계나 시민단체 일각에서도 현대모비스 분할이 정 회장 부자의 그룹 지배력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 부자가 사들여야 하는 대상인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낮추고, 매각 대금 '재원'이 될 현대글로비스 주가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만큼 주총 통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국인투자자들은 대부분 각자 판단에 따라 입장을 결정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일각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다고 해도 모두 동조할 가능성은 없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이날 엘리엇의 입장 발표 직후 “향후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