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일본 정부는 미국 아마존과 손잡았다. 드론 택배 사업을 시작한 아마존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고 지바시를 드론 택배 국가전략특구로 지정, 규제를 풀었다. 지바시는 드론 실증단지를 조성, 드론 택배 상용화를 곧 앞두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거점 물류 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중국의 행보는 더욱 거세다. 세계 1위 드론 기업인 DJI를 비롯해 알리바바와 화웨이를 전면에 내세워 드론 산업을 전폭 지원했다. 드론 택배를 위해 남서부 쓰촨성 한 지역에만 전용 공항 150곳을 짓기로 했다. 새로움을 앞세운 '규모의 경제'를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 현실은 암울하다. 늘 그래왔듯 국가 전체가 국가 세금 기반의 시범 사업으로 가득하다. 해외와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광산 조사, 유전 송유관 검사 등 산업 현장에서 유해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 드론조차도 각종 인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누가 혁신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 네거티브 규제 도입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은 것은 아니다. 규제 패러다임의 어젠다는 지난 정부와 국회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2015년에 정부는 일본처럼 지역 단위로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 주는 '규제프리존 도입'을 전격 발표했다. 국회도 관련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던 현재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3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규제프리존법을 대기업 특혜라는 프레임으로 몰며 반대하던 민주당은 최근 변했다. 올해 문재인 정부가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혁신 성장을 위해 특정 사업 분야의 규제를 일괄 풀어 주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의 필요성을 거론하자 국회에서는 여당 의원 입법으로 관련 법안이 5건이나 쏟아졌다. 규제 샌드박스(지역특구법 외)가 과거에 발의된 '규제프리존특별법'과 '임시허가제' 일부 내용을 담고 있어 씁쓸함을 씻을 수 없지만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입장 변화는 분명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정말 규제 완화가 목표이고 미래 성장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면 다음의 조항은 신중히 검토되고 제거되는 것이 맞다.
현재 발의된 민주당의 규제샌드 박스 5대 법안은 △무과실 책임 조항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불분명한 개인 정보 관련 단서 조항 등을 두면서 창업 의지를 미리부터 꺾는다는 비판이 높다. 또 규제 혁신이 가장 시급한 의료, 바이오,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분야에서는 더욱 미적지근하다.
그럼에도 더 이상 결정을 지체할 수는 없다. 관련법 통과를 위해 여야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난해 11월에 출범한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에서는 이미 논의가 시작됐다. 특위는 지난 석달 동안 공청회 5회, 부처 업무 보고 7회, 소위원회 5회 등을 개최하며 규제 개선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특위의 야당 간사이자 규제개혁·공정거래·사회안전망 소위원장을 맡으며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규제프리존특별법'과 '규제샌드박스법'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도 국가전략특구와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병행하면서 더욱 시너지를 내고 있다.
좁쌀죽을 먹으며 창업한 지 8년밖에 되지 않은 샤오미의 레이쥔 창업자는 “폭풍이 치는 길목에서는 돼지도 날 수 있다”며 글로벌 트렌드에 올라탔다. 카피(copy) 회사라는 오명을 경쟁력 있는(competitive) 회사라는 간판으로 당당히 바꿔 달았다. 거기에는 분명 국가와 산업 인프라가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잃은 4년의 규제 완화를 지금이라도 산업과 연구 현장에 제공해야 한다. 기회의 여신은 발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와 먹거리다. 세금으로 '주는 일자리'가 아니라 규제 패러다임 전환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alpha-song@naver.com